석류나무 그 집 앞

 

1부 — 돌아온 자리

상도동을 다시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오래 접어둔 사진 한 장을 우연히 찾아냈을 때였다. 회색빛이 바랜 인화지 속 벽만 둘러친 슬레이트집이 비뚤게 서 있었다. 평평해야 할 지붕은 한쪽으로 약간 기울었고 지붕 끝은 마치 혀처럼 얇게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 아래로 어릴 적의 내가 있었다. 무릎이 긁혀 피가 말라붙은 줄무늬 반바지에 발가락 끝으로 흙을 누르던 자세, 웃는 건지 눈이 부신 건지 알 수 없는 표정.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나는 깨달았다. 그 표정의 이유를 나는 아직 모른다는 사실을.

주말 아침 우산이 필요할 듯 말 듯한 비가 내렸다. 잔비가 도로 표면에 얇게 앉아 도로가 아닌 기억의 표면처럼 보였다. 버스에서 내려 두 번 골목을 돌아들자 예전의 냄새는 없었다. 그러나 경사만큼은 남아 있었다. 상도동의 길은 몸으로 기억된다. 발끝이 스스로 경사를 맞춰 내딛는 느낌—그 각도가 발목에 먼저 도착했다. 나는 천천히 발목이 기억을 이끄는 속도로 걸었다.

그 집이 있던 자리는 더 이상 ‘집’이 아니었다. 낮은 담장 대신 금속 펜스, 모퉁이의 시멘트 턱 대신 표준화된 경계석과 펜스 너머로 보이는 작은 공터에 돌 하나가 앉아 있었다. 나는 펜스에 손을 얹고 그 돌을 오래 보았다. 그 돌이 예전의 대문 앞 디딤돌이었을 리는 없다. 그래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무언가는 디딤돌이었을 수도 있는 무언가였다. 가능성의 잔향이 이 동네엔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공터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다가 마당 모서리였을 법한 지점을 찾았다. 사진 속에서 석류나무가 서 있던 자리. 지금은 나무가 없었다. 흙은 다져져 있었고 잡초가 얼룩처럼 번졌다. 나는 무릎을 굽혀 흙에 손가락을 넣었다. 축축한 냉기가 손안에 번졌다. 흙은 말이 없었다. 그러나 흙은 늘 말이 없어서 많은 걸 말해 준다. 그 옛날 붉은 열매가 터지며 빛나던 오후의 빛이 흙 속에서 미세하게 반사되는 듯했다. 기억이 하는 반사. 내 안쪽에서 밖으로 또는 바깥의 풍경이 내 안쪽으로.

슬레이트집을 떠난 건 아주 오래전인데 나는 처음 떠날 때 울지 않았다. 어른들은 분주했고 나는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박스들을 기차놀이로 엮어 줄을 만들었다. 박스와 박스 사이를 선으로 연결하면 어른들의 모든 일이 놀이가 되는 줄 알았다. 그날 내 마음에 울음 대신 박스의 선들이 번졌다. 가끔 어른들은 떠날 때 울고 아이는 남을 때 운다. 나는 그 법칙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펜스 밖에서 한 노인이 우산을 접으며 나를 쳐다봤다. “거기 뭐 찾는 거요?”

나는 펜스에 기대어 서서 말했다. “예전에 여기 집이 있었어요. 제가 살던.”

노인은 눈썹을 모았다. “다 부서졌지. 다 바뀌었고.”

“네! 압니다.”

“근데도 찾으러 오는구먼.”

나는 웃었다. “네. 근데도요.”

노인은 내 표정을 한참 보더니 나는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어딘가 아는 얼굴을 찾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람들 있어. 한 번은 돌아와 봐야 마음이 넘어간대. 길이 마음을 잡고 있거든.”

노인의 말은 우스갯소리처럼 들렸지만 정확했다. 오늘 나는 마음을 길에 맡기러 왔다. 마음이 길을 이끌면 아쉬움이 커지고 길이 마음을 이끌면 인정이 생긴다. 나는 오늘 인정 쪽으로 걸어와야 했다.

공터의 모서리에 비가 조금 더 많이 내리는 구간이 있었다. 아마 건물의 처마였던 무언가가 여전히 공기의 흐름을 바꾸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소리를 들었다. 빗소리였다. 그러나 단지 비가 콘크리트를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슬레이트에 박히던 빗소리가 내 귀에 먼저 떠올랐다. 탕, 탕, 탕—같은 음 같으면서도 늘 조금씩 다른 그 소리. 그 소리는 한때 내 잠을 재촉했고 여름밤의 더위를 잊게 했고 겨울밤의 어둠을 갈라놓았다.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소리는 가까워진다. 가까워진 소리는 시간을 얇게 만든다. 얇아진 시간의 틈 사이로 과거가 손을 내민다.

그때 석류나무가 있었다. 아주 선명하게. 지금 이 공터가 아니라 그때 그 마당 모서리에. 누군가가 나무를 심을 때 삽이 들어가는 소리는 땅의 목소리 같다. 땅이 알아들었다고 대답하는 소리. 나무가 처음 그 자리에 섰을 때 어른들은 뭐라고 말했을까. 누군가는 복을 부른다고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열매가 지저분하다고 했을 것이다. 어른들은 늘 두 개의 다른 말을 동시에 한다. 아이는 그 사이에서 어느 말을 믿을지가 아니라 두 말을 어떻게 함께 기억할지를 배운다. 나는 두 말을 다 믿었다. 복도 부르겠지 지저분하기도 하겠지. 그래서 석류나무는 복잡하고 아름다운 것이 되었다.

휴대폰으로 오래된 사진을 다시 열어 확대했다. 석류나무는 사진의 가장자리에 걸려 있었다. 중앙에 두지 않는 방식의 사랑. 우리는 늘 가장자리를 통해 중심을 기억한다. 나무를 중심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나는 그 나무를 생각한다. 만약 사진의 중앙에 나무가 있었더라면 아마 그것은 물건이 되었을 것이다. 가장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것은 기호다. 내게만 통하는 그러나 언젠가 누군가와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는.

“여기 사셨어요?”

등 뒤에서 누군가 물었다. 젊은 여자가 공원으로 들어가는 유모차를 멈추고 나를 보았다.

“네. 아주 오래전에요.”

“저도 이 근처 살아요. 여긴 그냥 빈터인 줄 알았는데.”

“그랬을 수도 있죠. 어떤 사람에게는 늘 빈터고 어떤 사람에게는 늘 집이고.”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랑 자주 올게요. 빈터가 집이 될 수 있다면, 여기서도 시작할 수 있겠네요.”

나는 웃었다. “그럴 거예요. 시작은 늘 빈 데서 하니까요.”

비는 잦아들었다. 나는 흙을 털고 일어섰다. 오늘 이 자리에서 무언가를 가져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무언가를 두고 가야 한다고. 사진 한 장을 꺼내 펜스 사이로 밀어 넣을 수는 없었다. 대신 머릿속의 문장 하나를 이 자리에 두기로 했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또렷하게.

“터져야 보이는 씨앗이 있다.”

석류알은 터져 흩어져야 빛난다. 그 빛은 땅에도 남고 눈에도 남는다. 오늘 나는 눈에 남은 빛을 땅에 다시 조금 내려놓고 간다. 다음에 오면 이 자리는 같은 빈터겠지만 내게는 조금 더 집에 가까운 빈터가 되어 있을 것이다.

돌아서려다 나는 다시 한 번 경사를 살폈다. 발목이 내게 말했다. 이 각도. 이 각도를 잊지 말라고. 아이였던 내가 비에 젖은 슬리퍼를 끌며 내려오던 경사. 비가 세차게 내리면 슬레이트 지붕 끝에서 물이 줄기로 떨어져 작은 폭포를 만들던 그 집. 그 폭포 아래에서 나는 손을 씻었다. 아무것도 씻어지지 않지만 모든 것이 씻기는 것처럼. 그때의 물 온도까지 갑자기 생각났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처음의 온도.

나는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는 일이 때로는 기억을 지키는 방식이 된다. 너무 자주 돌아보면 풍경은 사진이 되고 사진은 곧 물건이 된다. 오늘의 풍경은 물건이 아니라 문장이었으면 했다. 다음에 올 때 나는 이 문장을 이어서 쓸 것이다. 2부의 첫 문장은 아마 빗소리로 시작할 것이다. 슬레이트를 두드리던 빗방울과 그 아래에서 자란 아이의 귀에 남은 택, 탁, 탕의 차이를 구분하는 이야기로.

버스가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나는 계단을 오르며 속으로 또 하나의 문장을 덧붙였다.

“집은 사라져도 경사는 남는다.”

그리고 경사를 기억하는 발목이 남는다.

창밖으로 공터가 뒤로 미끄러지며 사라졌다. 사라짐의 속도는 늘 비슷하다. 그러나 기억의 속도는 다르다. 어떤 기억은 아주 천천히 따라오고 어떤 기억은 먼저 가서 기다린다. 오늘 나는 먼저 가서 기다리던 기억을 만났다. 다음에는 천천히 따라오는 기억의 손을 잡으러 올 것이다.

 

2부 — 슬레이트 여름

비가 그친 뒤의 열기가 골목에 눌어붙어 있었다. 낮은 담벼락과 경계석이 뜨거운 김을 내뿜는 듯했다. 펜스 너머 빈터의 흙은 금방 마르지 못해 얼룩을 남겼다. 나는 그 얼룩을 하나씩 밟지 않으려 조심히 걸었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미지근한 온도 그 온도가 그때의 여름을 불러냈다. 슬레이트 지붕은 뜨거웠고 뜨거움은 소리가 있었다. 햇빛이 기왓장과는 다르게 철판과는 또 다르게 맞부딪히던 날카로운 울림. 눈을 감으면, 그 울림이 곧바로 귀 안쪽의 얇은 막을 두드렸다.

나는 노트를 펼쳤다. 1부 마지막 장에 적어 둔 문장 아래로, 다음 문장을 이어 썼다.

“슬레이트 여름은 소리의 계절이었다.”

그리고 펜을 든 손을 잠시 멈추었다. 지금의 상도동 공기가 그때의 공기와 완전히 같을 수는 없지만—비슷한 각도로 내 몸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각도는 기억을 데려오는 가장 빠른 길이다. 나는 눈을 감고 여름의 각도에 몸을 기대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슬레이트 지붕은 색의 표정을 바꾸었다. 아침엔 잿빛 정오엔 하얗게 번진 은색 해 질 녘이면 어린 사과처럼 누르스름한 기미가 돌았다.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고개를 젖히면 지붕의 얇은 겹들이 비늘처럼 겹쳐 보였고 그 비늘 사이로 햇빛이 번쩍이며 ‘짹’ 하고 짧게 울었다. 나는 그 소리를 좋아했다. 이유를 묻는다면 그 소리는 언제나 처음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매일 반복되는데도 처음 같다는 건 어린 날의 특권이었다.

벽만 둘러친 집은 바람 길이 많았다. 창틀은 단단히 닫히지 않았고 문은 바람이 세게 불면 스스로 열렸다. 문짝이 흔들릴 때마다 거실 바닥에 깔린 비닐장판이 파도처럼 들썩였다. 여름 장판의 파도는 바닥을 바다로 바꾸었다. 나는 장판의 물결을 발바닥으로 미끄러지듯 건넜고 끝자락에서 철사로 고정된 선풍기 앞에 멈춰 섰다. 선풍기 몸통엔 숫자 1, 2, 3이 스티커로 붙어 있었는데 3으로 돌리면 스스로 떨며 앞으로 한 걸음—아니 반 걸음씩 나왔다. 나는 선풍기를 2로 두고 앞에 서서 ‘이렇게 서 있으면 시원해진다’라는 확신을 얼굴에 붙였다. 시원해지지 않아도 확신은 먼저 왔다.

우물가는 집 모서리를 돌아 작은 경사 끝에 있었다. 양은대야를 들고 물을 퍼 올리면 물결 위로 햇빛 조각들이 흔들렸다. 그 조각들 위로 손을 대면 손바닥이 빛을 턱턱 받았다. 대야 속에 발을 담그면 발목에서부터 처음의 온도가 올라왔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그 어느 쪽으로도 이름 붙이기 어려운 온도. 여름의 물은 늘 그 온도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 지나면 미지근해졌다. 미지근이라는 단어를 나는 여름에 배웠다. 어른들은 “중탕”이라는 말을 썼고, 나는 “미지근”을 썼다. 내 단어로 세계를 덮어 씌우는 일이 그때 내 일이었다.

마당 모서리에 서 있던 석류나무는 여름이 되면 새 잎이 조금 더 뾰족해졌다. 초록빛 끝이 햇빛에 부딪혀 작은 번개처럼 반짝였다. 어른들 말로는 그 나무가 우리보다 먼저 있었을 수도 우리가 먼저 살다가 뒤에 심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둘 다 믿었다. 먼저 있고 나중에 있는 것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걸 어린 날의 귀는 잘 받아들였다. 첫 작은 꽃이 떨어지던 날 붉은 조각들이 마당 장판에 흩어졌다. 신발 밑창에 붙은 조각이 집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 엄마는 빗자루로 쓸며 말했다. “예쁘면 치우기 어렵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쁜 건 늘 조금 늦게 치워졌다. 늦게 치워진 것들은 더 오래 기억되었다.

한낮의 뜨거움은 슬레이트 지붕에서 내려왔다. 지붕이 달궈지면 집 안 공기가 얇아졌다. 얇아진 공기는 사람이 하는 말을 연필 선처럼 가늘게 만들었다. 아빠가 “선풍기 낮춰”라고 말하면 그 말이 금세 공기에 흡수되었다. 공기가 말의 가장자리부터 먹어 들어갔다. 여름에는 싸움도 짧았다. 길게 싸우면 숨이 모자랐기 때문일까. 짧게 다투고 물을 마시고 서로 등을 보이면 금세 대충 화해의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그 대충이 싫지 않았다. 여름의 대충은 겨울의 깔끔보다 부드러웠다.

장마가 시작되면 슬레이트는 다른 소리를 냈다. 가랑비가 톡톡 두드리면 통통한 콩 튀는 소리였고 한 줄기 굵은 비가 내려치면 커다란 북을 두 손으로 치는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들을 분류했다. 톡–, 탁–, 탕—. 비의 속도와 굵기에 따라 음절을 다르게 붙였다. 비가 바뀔 때마다 집의 표정도 바뀌었다. 비에 젖은 벽에서는 이끼 냄새가 올라왔고 마당에 흙은 진흙으로 변했다. 나는 모서리에 놓인 연탄재 양동이를 피해 다니다가 종종 발을 헛디뎠다. 헛디딘 자리에 내 발 모양의 얕은 웅덩이가 생겼다. 비가 그치면 웅덩이에 하늘이 잠시 들어앉았다. 그 하늘은 종종 구름이 아니라 전깃줄을 비춰 주었고 전깃줄 위 참새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참새는 오래 보아도 도망가지 않았다. 참새와 나는 서로의 경계를 지키는 법을 그때 배웠다.

동네엔 여름의 경기가 있었다. 공터 축구, 고무줄놀이, 만화방의 선풍기 아래 줄서기, 분식집에서 얼음물 한 컵 나눠 마시기. 나는 골목 초입 구멍가게에서 얼음값을 배웠다. 얼음은 돈을 내면 주는 물건이지만 아주 더운 날엔 사장님이 “덤”을 조금 더 주었다. 덤의 크기는 숨의 길이와 비례했다. 숨이 가쁜 아이에게는 덤이 조금 더 컸다. 나는 숨을 가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더 뛰기도 했다. 덤을 받기 위한 노력—어른이 된 뒤로도 잊지 못한 경제의 첫 규칙이었다.

저녁이 가까워오면 석류나무 아래에 그늘이 생겼다. 그늘은 날마다 모양이 달랐다. 어떤 날은 길고 어떤 날은 둥글었다. 나는 그 그늘의 모양을 따라 자리를 정했다. 숙제도 그 자리에서 했고 종이비행기도 그 자리에서 접었다. 석류 알이 살짝 벌어져 안쪽 붉음이 보이던 어느 저녁 나는 알을 만져 보았다. 단단한 껍질 너머의 말랑함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 감촉은 “아직 아니다”라는 뜻이었고 동시에 “곧”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아직과 곧이 같은 시간대에 겹쳐 있을 수 있음을 나는 그날 배웠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누군가 “곧”이라고 말하면 나는 깊게 숨을 쉬었다. 어떤 곧은 너무 오래 걸리고 어떤 곧은 바로 도착한다. 석류는 늘 정확한 곧을 가르쳐 주었다.

밤이 되면 슬레이트는 뜨거움을 천천히 풀었다. 열은 지붕에서 별빛으로 흩어졌다. 벽 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커튼을 밀었다. 커튼은 내 볼을 스칠 때마다 사과껍질처럼 얇게 떨렸다. 그 순간 나는 자주 깨어 있었다. 깨어 있는 아이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다. 먼 데서 개 짖는 소리, 더 먼 데서 느리게 지나가는 기차 소리, 아주 가까운 데서 엄마가 뒤척이며 내는 이불 소리. 그 소리들 사이로 석류가 아주 작게 ‘톡’ 하고 움직이는 소리가 섞였다. 씨앗이 제자리에서 몸을 돌리는 소리 같았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면 꼭지 근처가 아주 미세하게 달라져 있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 달라진 자리. 여름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변화의 계절이었다.

어느 날 오후. 비가 그쳤다가 다시 내리려는지 하늘이 납작했다. 나는 마당에서 작은 폭포를 만들기 위해 슬레이트 지붕 끝 아래로 양은대야를 옮겼다. 지붕 물길이 대야로 떨어지게 각도를 맞추자, 물은 한동안 허공에서 방향을 잃다가 정확히 대야 한가운데를 찾아냈다. 톡— 탁— 탕—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물장난을 하다가 대야 가장자리에 미끄러졌다. 그때 어른의 손이 뒤에서 나를 붙잡았다. 휙 하고 반 바퀴를 돌려 세웠을 때 나는 얼굴을 들지 않아도 알았다. 땀과 비가 섞인 그러나 비가 더 많은 손 냄새. 어른의 손은 냄새로 기억되기도 한다. 그 손이 내 어깨를 한 번 두드렸다. 그리고 잠시 후 양은대야에 반달 모양이 생겼다. 어른과 아이가 같은 물을 보며 서로 다른 반달을 떠올렸다. 나는 ‘달’ 어른은 ‘접시’. 나는 그 차이를 안다. 그리고 지금도 둘 다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안다.

여름의 끝자락. 석류는 더 붉어졌다. 붉음은 긴장감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나는 그 붉음을 바라보며 내 몸도 따라 긴장되는 걸 느꼈다. 사람의 몸은 앞으로 올 일을 먼저 배운다. 터지기 하루 전날. 바람이 조금 불었다. 나는 창틀에 팔꿈치를 괴고 나무를 봤다.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 소리는 아주 작았다. 톡.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이만 깨어 있는 아이만 듣는다. 석류가 터지는 소리가 아니라 석류가 열리는 소리. 문이 아니라 씨앗이 여는 문. 그날 오후 우리는 석류를 따서 그늘에서 잘 익은 석류를 쪼갰다. 붉은 알들이 양은 접시 위로 떨어져 작은 성운을 만들었다. 어른들은 웃었고 아이들은 손가락을 물들였다. 여름의 혀는 달았고 달콤함은 곧 목이 말랐다. 나는 물을 마시고 또 석류알을 먹고 또 물을 마셨다. 석류는 “충분하다”라는 말 대신 “조금 더”라는 말을 가르쳤다. 여름은 늘 그런 계절이었다. 충분함이 아니라 조금 더의 계절.

밤이 깊어질수록 슬레이트의 열은 잦아들었다. 지붕은 하늘의 일부가 되었다. 별이 보이면 나는 손으로 만져 보려 했다. 닿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손을 들어 올리는 행위 자체가 닿음의 연습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닿지 않는 것에 계속 손을 뻗는 일—그것이 나를 자라게 했다.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슬레이트의 여름은 내 삶에 손을 뻗는 각도를 가르쳐 준 계절이었다.

 

바람이 잠깐 세졌다가 잦아들었다. 펜스의 얇은 선이 소리를 냈다. 나는 노트에 마지막 문장을 덧붙였다.

“여름은 보이지 않는 변화의 계절이었다.”

그리고 페이지 여백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석류 알 하나 크기만큼. 동그라미 안쪽은 비워 두었다. 비워 두는 일이 가끔은 더 정확한 기록이 된다. 채워 넣을 수 없는 것을 비워 두기—그 방법을 나는 이 동네에서 배웠다.

해가 서쪽으로 더 기울며 빈터의 그늘이 길어졌다. 그늘 모양은 아까와 달랐다. 나는 그 그늘 위에 서서 발목이 기억하는 경사를 또 한 번 느꼈다. 여름의 각도가 오늘에도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것은 적었지만 남아 있는 것으로 충분한 날이 있다. 오늘이 그날이라고. 나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적어 두었다.

“슬레이트를 두드리던 빗방울의 차이—톡, 탁, 탕—을 구분하던 아이는 지금도 소리의 각도로 길을 찾는다.”

다음 장을 넘겼다. 3부의 첫 문장은 아마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석류의 시간은 집보다 느리게 그러나 사람보다 정확하게 흘렀다.”

3부 — 석류의 시간

빈터에 서 있으면 시간은 자꾸만 흩어졌다. 벽돌과 시멘트는 현대의 질서를 말하고 있었지만 공기 속에는 아직 과거의 리듬이 배어 있었다. 상도동이라는 이름이 그랬다. 오래 전에 상여꾼들이 모여 살던 동네. 죽음을 추모하는 노래와 북소리가 골목마다 흘러나오던 곳. 그 사실을 나는 최근에야 알았다. 하지만 어릴 적에도 분명 알지 못한 채 들었던 소리가 있었던 것 같다. 장례 행렬의 북소리, 구슬픈 소리, 사람들이 죽음을 배웅하던 발자국의 울림. 그 소리들은 어린 나의 귀에도 스쳐갔지만 나는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알지 못했다. 이제 와서야 이름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었다.

나는 노트에 적었다.

“죽음을 배웅하는 동네에서 나는 첫 열매가 터지는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석류의 붉은 알갱이들이 마당을 물들이던 그날로 기억이 번졌다.

 

석류나무는 우리 집 마당 모서리에 서 있었다. 키는 어른의 어깨를 훌쩍 넘었고 가지는 담벼락 바깥으로 삐져나가 골목을 향해 뻗어 있었다. 아이들 눈에는 나무가 집의 일부라기보다 동네 전체의 기둥처럼 보였다. 여름의 끝자락. 그 나무에 작은 꽃이 피었다가 금세 붉은 열매로 바뀌었다. 나는 날마다 그 변화를 관찰했다. 열매는 하루가 다르게 커졌고 겉껍질이 팽팽해질수록 안쪽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더 궁금해졌다.

어른들은 저마다 다른 말을 했다.

“석류는 복을 부른다.”

“석류는 터지면 지저분하다.”

나는 두 말을 다 믿었다. 복도 부를 테고 지저분하기도 할 것이다. 아이의 세계에서는 모순이 충돌하지 않았다. 두 가지가 동시에 가능했다. 그래서 석류는 내게 복잡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처음으로 열매가 갈라진 날. 그 장면은 마치 하늘이 두 쪽 나는 것 같았다. 작은 틈새로 붉은 알이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을 때 햇빛이 거기에 부딪혔다. 붉음은 빛을 품고 있었고 빛은 다시 붉음을 드러냈다. 나는 손을 뻗었다. 그러나 엄마가 먼저 내 손을 잡았다.

“아직 덜 익었어. 기다려야 해.”

기다림이라는 단어는 어린 나에겐 낯설었다. 모든 것이 지금 당장 일어나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류는 내게 ‘곧’이라는 시간 개념을 가르쳐 주었다. 아직과 곧이 동시에 공존하는 열매. 그 모순이 터질 때 알알이 맺힌 씨앗이 세상에 쏟아졌다.

터지는 순간의 소리는 아주 작았다. 톡. 귀 기울인 아이만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땅으로 번져 나가며 마당에 울림을 남겼다. 그 울림은 오래도록 내 귀에 남아 있었다. 어쩌면 그때 내가 들은 건 석류가 열리는 소리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 즈음 골목 아래쪽에서 장례 행렬이 지나가곤 했다. 상여꾼들의 발자국, 북소리, 곡소리—그 모든 것이 섞여 하나의 울림을 만들었다. 석류의 열림과 장례의 발걸음은 어쩐지 닮아 있었다. 둘 다 무언가를 보내고 무언가를 드러내는 순간이었으니까.

석류를 따던 날 아버지는 열매를 접시에 올려놓고 칼을 가져왔다. 칼끝이 껍질을 가르는 순간 붉은 알들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마치 사람 속 같지 않니? 알알이 다르지만 다 붙어 있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조금 무서웠다. 그 붉음이 너무 선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손가락으로 알을 집어 입에 넣자 달콤한 맛이 퍼졌다. 두려움은 금세 사라지고 달콤함이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연거푸 알을 집어 삼켰다. 알은 입안을 물들였고 혀끝은 시렸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엄마가 말했다.

“조금만 먹어. 배탈 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충분함이라는 개념은 그때 내게 없었다. 여름의 석류는 늘 조금 더를 요구했다.

그날 밤 석류껍질은 마당 구석에 버려졌다. 붉은 흔적이 흙 위에 번졌다. 달빛이 비추자 마치 작은 상여 행렬이 흩어진 듯 보였다. 나는 누워서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상도동이라는 동네 이름의 뜻을 그때는 몰랐지만 죽음을 배웅하는 자리가 무엇인지 이미 눈으로 본 셈이었다. 흩어진 껍질도, 터져 나온 알갱이도 다 어디론가 가야 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땅 속에 남아 씨앗이 될 것 같기도 했다. 죽음과 삶이 겹쳐 보이는 순간—나는 그때 처음으로 시간이 두 방향으로 흐른다는 걸 느꼈다.

석류는 그 뒤로도 해마다 터졌다. 터지는 순간마다 나는 조금씩 자랐다. 알갱이는 흩어졌고 나는 자라났다. 둘은 같은 일이었다. 흩어져야만 새로운 것이 오는 법. 상도동의 여름, 석류나무는 내게 그 법칙을 반복해서 가르쳐 주었다.

 

나는 노트에 문장을 덧붙였다.

“터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펜 끝이 멈췄을 때 바람이 펜스를 스쳤다. 아주 멀리서 장례식장의 스피커 같은 소리가 흘러왔다. 지금도 여전히 이 동네엔 죽음을 배웅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아이였던 나는 그 소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석류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렸기 때문이다. 죽음과 열림, 흩어짐과 시작—그 모든 것이 상도동이라는 이름 속에서 오래 이어져 오고 있었다.

나는 공터를 나서며 이렇게 적었다.

“상도동의 시간은 석류의 시간처럼 흩어지며 이어졌다.”

 

4부 — 골목 사람들

빈터를 한 바퀴 더 돌아 나오는 길에 나는 문득 사람들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집은 사라졌어도 목소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골목 어귀마다 걸려 있던 철문, 작은 가게의 간판, 하얀 분필로 칠판에 적히던 가격표—그 사이에 목소리들이 겹겹이 남아 있었다. 그 목소리들은 물건을 파는 소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서로를 불러주는 소리였다. 상도동은 원래 상여꾼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고 한다. 죽음을 배웅하는 사람들이 살던 자리라 그런지 목소리마다 어딘가 애틋한 울림이 있었다. 그 목소리들이 모여 만든 기억 속 골목으로 나는 천천히 들어갔다.

 

우리 집에서 골목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구멍가게가 있었다. 문짝은 항상 반쯤 열려 있었고 안쪽은 어둑했다. 눈이 어둠에 적응할 즈음 빼곡히 진열된 과자 봉지와 유리병 속 알사탕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장님은 늘 파리를 쫓으며 “뭘 찾니?” 하고 물었다. 나는 주머니 속 동전을 더듬다 결국 쫀득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고무줄에 묶여 있던 얇은 종이봉지를 찢어내면 손끝에 달라붙는 달콤한 끈적임이 따라왔다. 집에 돌아가기도 전에 길가에서 다 먹고 말았다. 그러고는 혀끝이 빨갛게 물든 걸 들키지 않으려고 입술을 닦았다.

골목 조금 더 내려가면 분식집이 있었다. 커다란 솥에서 떡볶이가 끓고 하얀 김이 창문을 뿌옇게 덮었다. 아주머니는 우리를 보면 “얼마나?” 하고 먼저 물었다. 돈이 모자라면 아주머니는 국물만 따로 한 국자 더 떠 주기도 했다. 매운 국물을 들이키면 땀이 솟고 이마가 뜨거워졌다. 그때 들리던 소리—칼로 어묵을 써는 소리, 국자와 냄비가 부딪히는 소리, 손님들이 젓가락으로 그릇을 두드리는 소리—그 소리들은 떡볶이 맛만큼 강렬했다.

골목 반대편에는 작은 만화방이 있었다.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밀고 들어가면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의자 대신 낮은 평상과 대여섯 개의 선풍기가 있었다. 선풍기 날개엔 먼지가 잔뜩 끼어 있었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음 권 있어요?” 하고 묻던 목소리, 만화책을 빌려주며 “찢지 말아라” 하던 사장님의 경고—그 소리들이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때로는 만화방 안에서도 장례식장 쪽에서 흘러나오는 곡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어른들은 아무렇지 않게 만화 대여 값을 치렀다. 죽음을 배웅하는 소리와 삶을 즐기는 소리가 한 골목 안에서 겹쳐 들리던 동네. 그것이 상도동이었다.

골목길 끝에는 공터가 있었다. 우리는 그곳을 운동장이라 불렀다. 네모난 모양조차 아니었고 비탈진 흙바닥이었지만 축구를 하기에 충분했다. 돌멩이를 골대로 세우고 발이 빠른 아이와 느린 아이가 뒤섞여 뛰었다. 공이 굴러갈 때마다 흙먼지가 일었다. 누군가가 넘어지면 다 같이 멈추어 세웠고 다시 공을 차기 시작했다. 해가 지면 부모님들이 “밥 먹어라!” 하고 불러냈다. 그러나 우리는 몇 분 더 버텼다. 버티는 동안 상여 행렬이 마침 지나가기도 했다. 북소리와 곡소리가 공터 위로 흘러들어왔다. 잠시 멈춘 우리는 공을 잡은 채 그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의 마지막 길과 우리의 놀이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교차했다. 어른들은 무겁게 발을 옮겼고 아이들은 다시 공을 찼다. 삶과 죽음이 나란히 흘러가는 풍경—상도동에서는 그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집 앞 석류나무도 골목의 일부였다. 아이들은 나무 아래 모여 놀았다. 누군가는 나무에 매달린 붉은 알을 보고 “피 같다”고 속삭였고 또 다른 아이는 “보석 같다”고 말했다. 나에게는 두 말 다 맞았다. 석류는 피이기도 하고 보석이기도 했다. 상도동의 풍경이 늘 그러했듯 하나의 사물은 언제나 두 가지 의미를 품고 있었다. 그 이중성이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풍요롭게도 했다.

 

나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상도동의 골목은 집의 바깥방이었다. 삶과 죽음! 놀이와 추모가 함께 들리는 방.”

펜스를 떠나 나오는 길. 지금도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동시에 장례식장의 스피커 소리도 멀리서 겹쳐왔다. 어쩌면 상도동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렇게 두 가지 소리를 항상 함께 불러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페이지를 덮으며 다음 장의 제목을 적었다.

 

5부 — 겨울과 연탄

겨울이 되면 상도동의 길은 더욱 가팔라졌다. 발목이 기억하는 경사는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기 쉬웠고 숨을 몰아쉬는 동안 입김이 하얗게 흩어졌다. 빈터에 서서 그 입김을 내보니 눈앞에 옛날의 겨울 장면이 떠올랐다. 슬레이트집 안에 가득 차 있던 연탄 냄새, 검은 먼지, 그리고 차가움 속에 숨어 있던 따뜻함.

나는 노트에 적었다.

“연탄 냄새는 겨울의 심장이었다.”

그리고 기억은 다시 그때의 겨울 속으로 스며들었다.

 

겨울 아침 방 안은 아직 어둠이 남아 있었다. 창문 유리에는 하얀 서리가 꽃처럼 피어 있었고 내가 손가락으로 그리면 그 자리에 투명한 길이 생겼다. 길 너머로 보이는 건 여전히 어두운 골목 그리고 먼지 섞인 숨결 같은 하늘빛이었다.

아버지가 연탄을 갈아 넣을 때마다 방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처음 불을 지피면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이불 속에서 웅크린 몸은 그 냄새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연탄불이 자리 잡으면 방바닥이 서서히 데워졌다. 발끝에서부터 온기가 올라오고 장판은 따뜻하다 못해 조금 뜨겁게 느껴졌다. 그 순간 차가움은 밀려났고 우리는 겨울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연탄은 언제나 위험을 품고 있었다. 가끔은 연탄가스가 새어 모두가 머리가 무겁다며 일어났다. 엄마는 서둘러 창문을 열고 부엌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들이닥쳤지만 그 차가움 속에 살았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죽음과 삶은 공기 한 줄기 차이로 갈린다는 것을.

연탄재를 비우러 가는 일은 내 몫이기도 했다. 양동이를 들고 골목 어귀까지 나가면 이미 이웃집 아이들이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까만 재가 바람에 날려 서로의 얼굴을 덮기도 했고 우리는 까맣게 변한 얼굴을 보고 깔깔 웃었다. 하지만 어떤 날은 연탄재를 버리러 가는 길에 상여 행렬과 마주쳤다. 흰 상복을 입은 사람들, 북소리, 곡소리.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양동이를 가슴께로 들어 올렸다. 까만 연탄재와 흰 상복이 골목에서 스쳤다. 한쪽은 삶의 불씨를 위해 남겨진 찌꺼기였고 다른 한쪽은 죽음을 배웅하는 마지막 길이었다. 그 두 풍경은 나란히 겹쳤다.

저녁이 되면 연탄 난로 위에 양은 주전자가 올려졌다. 뚜껑 틈으로 김이 새어 나오면 방 안은 다시 안개처럼 뿌옇게 변했다. 김이 창문에 맺히면 물방울이 흘러내렸고 나는 손가락으로 그 물방울 경주를 지켜보았다. 작은 물방울이 큰 물방울에 닿아 합쳐지고 결국 창틀 아래로 떨어졌다. 어른들은 차를 우려 마셨지만 나는 그 물방울이 어디로 흘러가는지가 더 궁금했다.

겨울밤은 길었다. 바람이 벽 틈새로 스며들면 종이 문이 들썩였다.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가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소리를 두려워했지만 동시에 기다리기도 했다. 혹시 그 문 너머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까 싶어서.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엄마가 내 옆에서 이불을 덮어 주며 말했다.

“추운 밤은 같이 있어야 덜 춥지.”

그 말은 겨울의 진실이기도 했다. 따뜻함은 불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생겨난다는 진실.

연탄은 집집마다 필요했기 때문에 이웃끼리 자주 서로를 도왔다. 우리 집 연탄이 모자라면 옆집에서 두어 장 빌려주었고 다음 날 갚았다. 그 빚은 돈으로 치르지 않았다. 가끔은 반찬 한 접시 때로는 김치 몇 조각이 빚의 값이 되었다. 그 작은 교환은 상도동 골목의 법칙이었다.

겨울이 깊어지면 석류나무는 잎을 모두 떨어뜨렸다. 앙상한 가지가 하늘을 향해 벌어진 손가락처럼 보였다. 아이였던 나는 그 가지들이 추위에 떨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하지만 어른들은 말했다.

“겨울에도 나무는 살아 있어. 봄을 준비하는 거야.”

나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에 새겨 두었다. 지금 와서 보니 그 말은 사람에게도 해당되었다. 추운 계절에도 우리는 살아 있었고 언젠가 올 따뜻한 날을 위해 버티고 있었다.

어느 날, 연탄재를 비우러 간 골목길에서 어른들의 이야기가 들렸다.

“상도동은 원래 상여꾼 동네라 그런지 추모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 남의 일에도 마음을 내주잖아.”

그 말을 흘려들었지만 어쩐지 오래 남았다. 그 동네의 겨울 풍경이 유난히 따뜻했던 이유가 그 이름 속에 숨어 있었던 걸까.

 

나는 노트에 문장을 덧붙였다.

“연탄의 불씨와 상여의 북소리. 둘 다 겨울의 심장을 두드렸다.”

펜을 내려놓자 손끝에 차가움이 스며들었다. 빈터 위로 찬바람이 불었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다. 죽음을 추모하는 동네에서 자란 덕분에 차가움 속에서도 따뜻함을 찾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다음 장의 제목을 적었다.

6부 — 이사, 그리고 빈 자리.

 

6부 — 이사, 그리고 빈 자리

빈터 앞에 서면 마음이 묘하게 가벼워졌다가 무거워졌다. 집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떠남의 공기가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나는 오늘 이사하던 날을 떠올렸다. 트럭이 골목에 들어오고 박스가 줄지어 마당에 놓였던 그날. 떠남의 순간은 언제나 빈자리를 남겼다. 나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빈자리는 떠난 자리가 아니라 아직도 남아 있는 자리다.”

 

이사 소문은 동네에 먼저 퍼졌다. 골목 담벼락마다 붉은 스프레이 글씨가 남았다. “재개발.” “철거 예정.” 글씨는 어른들의 말보다 더 빠르고 정확했다. 나는 그 글씨들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지만 어른들의 얼굴 표정으로 눈치를 챘다. 긴장, 서운함, 그리고 체념.

이사 날 아침. 비가 내렸다. 가랑비였지만, 슬레이트 지붕은 그것마저 크게 울렸다. 탕, 탁, 탕. 마당은 금세 진흙밭이 되었고, 신발은 흙을 잔뜩 묻힌 채 박스를 오갔다. 아버지는 낡은 장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게 또 새 집에 가면 맞을까 모르겠다.”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집이야 우리가 맞춰 가는 거지.”

나는 박스를 하나씩 모아 줄로 엮었다. 박스와 박스를 연결하면 기차처럼 보였다. 나는 그 기차놀이에 몰두했다. 어른들은 짐을 옮기느라 정신없었지만 내겐 그날이 놀이 같았다. 그러나 기차는 결국 집을 떠나는 열차였다. 나는 그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이웃들은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다. 구멍가게 사장님은 사탕 봉지를 내밀며 “이건 덤이야” 하고 웃었다. 분식집 아주머니는 떡볶이 국물을 한 국자 담아 “길 떠나는 날은 매운맛이 좋아” 했다. 만화방 사장님은 빌린 책을 굳이 돌려받지 않고 “새 동네 가서 가져가 봐” 했다. 그 인심들이 더 무거운 짐처럼 마음에 쌓였다.

짐을 다 실을 즈음 골목 아래에서 북소리가 들렸다. 또 하나의 장례 행렬이었다. 상여꾼들이 느린 발걸음으로 골목을 올라왔다. 흰 상복, 곡소리, 그리고 북소리. 어른들은 잠시 일을 멈추고 행렬이 지나가도록 자리를 내주었다. 나는 트럭 위에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떠나는 우리 집과 떠나는 한 사람의 몸이 같은 길 위에서 교차했다. 삶의 떠남과 죽음의 떠남이 한 골목에 동시에 있었던 순간. 그때 나는 알았다. 상도동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란 걸.

마당 한 켠의 석류나무는 마지막까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가지 끝엔 아직 터지지 않은 열매 하나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열매를 따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가 손을 막았다.

“그건 두고 가. 나무 몫이야.”

나는 대신 땅에 떨어진 붉은 석류 알 몇 개를 주머니에 넣었다. 석류 알은 금세 으깨져 손가락에 물들었다. 손바닥이 붉게 번졌지만 나는 손을 닦지 않았다. 그 붉음이 무언가를 남겨 줄 거라 믿었다.

트럭이 골목을 빠져나갈 때 나는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석류나무가 멀어졌다. 가지가 흔들리며 손을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바람이 불어 열매 하나가 터졌다. 붉은 알갱이들이 흩어져 땅에 떨어졌다.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석류는 마지막까지 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흩어져야 남는다.”

 

나는 펜스를 붙잡고 눈을 감았다. 그날의 붉음이 아직도 손바닥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주머니 속에 넣었던 석류 알들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그 색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빈터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많은 것들이 남아 있는 자리였다.

노트에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이사는 떠남이 아니라 빈자리를 새기는 일이다.”

그리고 다음 장의 제목을 적었다.

7부 — 도시의 껍질.

 

7부 — 도시의 껍질

빈터 앞 가로등 기둥에 이사 광고 전단이 겹겹이 붙어 있었다. 한 장은 절반이 뜯겨 나갔고 다른 한 장은 비를 먹어 투명해졌다. 전단의 문장들은 다 비슷했다. 전세, 반전세, 관리비 별도, 보증금 협의. 숫자들이 사람의 온도보다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전단 가장자리의 스테이플 자국을 손톱으로 톡 건드렸다. 금속은 작아도 오래 남는다. 붙였다 떼고 또 붙이는 동안 남는 건 자국뿐이었다. 도시의 표면은 그런 식으로 늘어났다. 껍질이 겹을 더했다. 나는 노트에 적었다.

“도시는 껍질을 갈아 끼우며 살아남는다. 그 사이에서 사람은 자신의 속살을 감추거나 조금 내보이거나.”

그리고 페이지를 넘겼다. 상도동을 떠난 이후의 시간 나는 얼마나 많은 껍질을 덧입고 벗었는지 세어 보았다.

 

상도동을 떠난 뒤 첫 동네의 기억은 문 손잡이의 감촉으로 남아 있다. 방은 작았고, 창은 낮았다. 창틀에 팔꿈치를 올리고 밖을 보면 맞은편 건물의 벽돌만 보였다. 붉은 벽돌이 규칙적으로 쌓여 있었지만 나는 그 규칙의 사이사이가 더 궁금했다. 겨울이면 틈으로 바람이 들어왔고 여름이면 빛이 틈으로 나갔다. 틈이란 언제나 무엇을 드나들게 하는 구멍이었다. 그 방에서 나는 운다는 것을 배웠다. 상도동을 떠나던 날 울지 않았던 내가 뒤늦게야 울음을 익혔다. 울음은 밤에만 찾아왔고 내 울음은 벽돌 틈으로 스며들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학교에 갔고 돌아와선 창틀의 먼지를 닦았다. 먼지 위에 손가락으로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석류 알 크기만큼. 지우고 다시 그리고, 지우고 또 그렸다.

두 번째 동네는 도시의 백색 소음으로 기억된다. 엘리베이터가 더 올라가도 되는 층수를 기다릴 때 들리던 ‘핑—’ 소리. 복도 끝 배달카트의 바퀴가 내는 삐걱임. 밤마다 창 너머로 스며들던 환풍기 소리. 나는 그 소리들의 차이를 구분했다. 상도동에서 배운 톡, 탁, 탕의 차이처럼. 소리가 다르면 밤이 달랐다. 소리의 결을 따라 잠이 들거나 깨어 있거나 했다. 그곳에서 나는 언어를 고쳐 쓰는 법을 익혔다. ‘우리’ 대신 ‘저희’가 입에 붙었고 ‘동네’ 대신 ‘단지’라는 말을 썼다. 계단참에서 마주친 얼굴들은 빠르게 인사하고 빠르게 사라졌다. 안부보다 방향이 먼저였고 서로의 집보다 엘리베이터 층수가 먼저였다. 그래도 가끔 비 오는 밤이면 복도 끝에 서서 바깥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어깨선이 슬며시 떨리면 나는 이해했다. 울음의 시간은 도시의 어느 복도에도 숨어 있다는 것을.

세 번째 동네는 높이로 기억된다. 창밖이 넓었다. 하늘이 많이 보였고 바람은 갇히지 않았다. 그러나 높이는 때로 거리를 뜻했다. 땅과 멀어질수록 나는 발이 기억하는 경사를 덜 느꼈다. 지상에서 멀어지는 대신 다른 무게가 생겼다. 보증금의 단위, 관리비의 월별 증감, 물건의 브랜드. 나는 돈을 쓰는 방법을 배웠고 돈으로 시간을 사는 법도 배웠다. 택배가 제시간에 오지 않으면 화가 났다. 내가 화를 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오래 생각했다. 화는 서운함의 옷을 입고 왔다. 서운함은 내가 어느새 누군가의 노동을 타인의 얼굴 없이 기대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나는 멈춰 서서 벗겨진 껍질을 들여다보았다. 그 껍질 속에서 상도동 골목에서 이름 불러주던 목소리들이 아주 작게 울렸다.

나는 몇 번 더 이사를 했다. 박스는 더 빠르게 접히고 더 빠르게 펴졌고 테이프는 손에 익었다. 한 손으로도 긴 테이프를 매끈하게 잡아당기고 이음새를 바르게 맞추는 법을 배웠다. 이사를 거듭할수록 몸은 효율을 익혔고 마음은 지연을 배웠다. 먼저 옮겨간 것은 늘 몸이었고 마음은 또 다른 박스 안에서 늦게 도착했다. 늦게 도착한 마음은 새 방의 구석에 며칠씩 앉아 있었다. 앉아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방의 냄새가 됐다. 냄새가 되는 순간, 나는 비로소 그 집의 거울을 봤다. 거울 속 얼굴이 “여기 살아요”라고 말하는 데까지 많은 박스가 필요했다.

도시의 껍질을 벗기는 일은 뜻밖의 장소에서 일어났다. 동네 빨래방이었다. 회전창 앞에 앉아 원통 속 하얀 거품을 바라보면 내 속이 같이 돌았다. 거품이 융단처럼 스며나왔다 들어가고 천의 주름이 풀렸다 말렸다 했다. 나는 그 앞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누구나 자기 속을 빨래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빨래가 끝나면 따뜻한 공기가 뿜어져 나왔고 나는 그 공기 앞에서 손을 말렸다. 손이 마르면 다시 껍질을 입을 수 있었다.

때로는 도시의 껍질이 등 뒤에서 벗겨지기도 했다. 해고 통지를 받던 날 내 몸은 내 몸 같지 않았다. 더 이상 이 키보드 이 자리 이 사무실에 머물 수 없다는 말. “부서 조정”이라는 위로의 문장 뒤에는 자리 없음이라는 단호함이 있었다. 빈자리. 상도동에서 배운 빈자리와는 다른 빈자리—마음이 남아 있기도 전에 비워지는 자리였다. 그 빈자리를 떠나오는 길에 나는 갑자기 석류의 ‘톡’을 떠올렸다. 열리는 소리. 문이 닫히는 날에 나는 열리는 소리를 떠올렸다. 모순은 나를 살렸다. 열림은 언제나 닫힘의 반대편에서만 오는 게 아니었다. 닫힘이 깊을수록 열림은 얇고 정확한 선으로 찾아왔다. 나는 그 선을 따라 집으로 걸었다. 집으로 가는 길. 노을이 아스팔트 위에 번졌다. 번진 색은 잠깐 석류의 붉음을 닮았다.

어느 해 겨울. 나는 상도동을 지도에서 찾았다. 검색창에 이름을 넣고 화면을 손가락으로 확대했다 줄였다. 상도동. 글자를 누르는 순간 오래 전의 경사가 내 발을 스쳤다. 화면은 냄새를 주지 못했고 소리를 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도의 곡선이 옛 골목의 결을 조금 닮아 있었다. 나는 스크린 위에서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손끝이 경사를 기억하는 방식. 그날 밤 나는 결심했다. 돌아가 보자. 껍질을 벗길 수 있을 만큼 벗기고 벗겨낼 수 없는 것들은 그대로 두고 빈터 앞에 서 보자. 껍질과 속살의 경계를 다시 한 번 만져보자.

돌아가기 전날. 나는 서랍을 뒤져 오래전 상자에서 작은 봉투를 찾았다. 봉투 안에는 굳어버린 석류 알이 두어 개 들어 있었다. 그게 정말 석류였는지 아니면 내 상상력이 붙여 넣은 것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손바닥 위에 올리니 알은 이미 돌처럼 말라 있었다. 붉음은 사라졌고 색깔은 누렇게 바랬다. 그러나 모양은 남아 있었다. 모양은 오래 산다. 나는 그 알을 다시 봉투에 넣었다. 봉투를 닫으며 마음속으로 한 문장을 적었다. “색은 사라져도 모양은 남는다. 모양이 남으면 다시 색을 불러올 수 있다.”

 

가로등 불이 켜졌다. 빈터 위로 빛이 번졌다. 빛은 깎아지른 경사를 따라 얇게 흘렀고 펜스의 그림자가 바닥에 줄무늬를 그렸다. 나는 노트의 처음 페이지로 돌아가 1부의 첫 문장을 읽었다. “상도동을 다시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그 문장 위에 오늘의 문장을 겹쳐 썼다.

“도시는 껍질을 덧입지만 발은 처음의 각도를 잊지 않는다.”

나는 펜을 덮고 한동안 빈터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펜스를 한번 흔들고 지나갔다. 금속이 내는 얇은 소리가 상여 북의 아주 먼 잔향처럼 들렸다. 상도동이라는 이름이 내게 가져다준 기묘한 평온—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또 누군가를 맞이하던 동네. 나는 떠났고 다시 돌아왔다. 떠남과 돌아옴 사이에서 사람은 껍질을 바꿔 입는다. 그러나 어떤 각도, 어떤 소리, 어떤 냄새는 바뀌지 않는다. 바뀌지 않는 것이 돌아오게 한다.

다음 페이지 상단에 나는 작게 제목을 썼다.

8부 — 돌아오는 발걸음.

그리고 그 아래 한 줄을 더 적었다.

“길이 마음을 이끌 때 기억은 좌표가 된다.”

 

8부 — 돌아오는 발걸음

빈터 앞 펜스에 손을 얹고 있으면 발끝이 저절로 경사의 각도를 따라 내려가려 했다. 발목이 기억하는 길은 지도보다 정확했다. 나는 몇 발짝 물러서 골목 입구부터 다시 걸었다. 천천히 마치 그 길이 내게 다시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리듯이. 바람에 날린 전단지 조각이 발등을 스쳤다. 나는 몸을 숙여 전단을 주웠다가 그대로 흙 위에 두었다. 집이 사라져도 길은 남는다. 그 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은 언제나 나를 데려왔다.

나는 노트에 적었다.

“길은 지도를 기억하지 않는다. 발목만이 길을 기억한다.”

 

성인이 된 나는 오래 미루던 발걸음을 내딛고 다시 상도동에 들어섰다. 낡은 사진과 흐릿한 기억만으로는 부족했다. 직접 골목을 걸어야 했다. 골목 입구는 바뀌어 있었다. 편의점 간판이 번쩍였고 버스정류장에는 전광판이 깜빡였다. 그러나 경사는 그대로였다. 나는 발목을 바짝 세워 걷기 시작했다. 첫 모퉁이를 돌자 어릴 적 구멍가게가 있던 자리는 세탁소 간판이 걸려 있었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골목에 퍼졌다. 나는 무심코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는 옛날 만화방의 선풍기 소리와 어딘가 닮아 있었다. 기계의 반복, 숨결 같은 울림.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소리를 오래 들었다.

분식집이 있던 자리에는 치킨집이 들어섰다. 문을 열자 기름 냄새가 골목을 채웠다. 순간 떡볶이 국물이 끓던 소리와 김이 떠올랐다. 아이였던 나는 동전 몇 개를 꼭 쥐고 서서 “얼마나?”를 외치던 아주머니를 기다렸었다. 이제는 다른 주인이 다른 음식을 팔고 있었지만 기름 튀는 소리는 여전히 배고픔을 불러내는 소리였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 냄새에 취했다.

공터는 더 이상 없었다. 대신 아파트 담장이 길을 막고 있었다. 나는 담벼락을 따라 한참 걸었다. 담장은 높고 단단했지만 그 뒤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똑같았다. 공을 차는 소리, 깔깔 웃는 소리. 나는 발을 멈추고 웃음을 따라가려 했다. 하지만 담장은 열리지 않았다. 웃음은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만으로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공터를 운동장이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마당 한 켠에 석류나무가 있던 자리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펜스 너머 공터는 이미 정리되어 있었고 잡초 몇 포기가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기억이 좌표를 만든다. 내가 서 있던 위치, 담벼락의 모서리, 지붕의 그림자가 지던 방향. 그 모든 것이 내 몸을 통해 다시 계산되었다. 나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땅에 얹었다. 흙은 차가웠지만 금세 따뜻해졌다. 땅이 내 체온을 받아들이는 동안 나는 분명히 느꼈다. 여기였다. 석류나무가 서 있던 자리.

어릴 적 나는 나무를 바라보며 시간의 변화를 배웠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석류 알이 터지고 껍질이 흩어졌다. 그 모든 과정은 죽음을 배웅하던 동네의 풍경과 닮아 있었다. 장례 행렬이 지나갈 때마다 나는 석류를 떠올렸다. 흩어짐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그 두 장면이 내게 동시에 가르쳐 주었다.

 

나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장소가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각도다.”

펜 끝이 종이에 닿을 때 멀리서 상여 행렬의 북소리 같은 울림이 들렸다. 실제였는지 내 기억이 만들어낸 메아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나는 노트를 덮으며 다음 장의 제목을 썼다.

9부 — 석류의 비밀.

 

9부 — 석류의 비밀

빈터를 떠나 집으로 돌아와 나는 서랍 속 낡은 상자를 꺼냈다. 이삿날 허둥지둥 챙겨온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일부러 숨겨 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자였다. 종이는 누렇게 바랬고 모서리는 몇 번이고 찢어졌다 붙은 흔적이 있었다. 상자를 열자 오래된 냄새가 났다. 종이와 흙 그리고 어쩐지 달콤한 기운이 섞인 냄새. 그 속에서 작은 봉투가 나왔다. 봉투 겉에는 낯익은 글씨로 단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석류나무.

나는 봉투를 조심스레 열었다. 안에는 누렇게 변한 메모지와 몇 장의 사진, 그리고 말라붙어 돌처럼 굳은 붉은 알갱이 몇 개가 들어 있었다. 순간 어린 시절 주머니 속에서 으깨지던 알의 감촉이 되살아났다. 나는 메모지를 펼쳤다. 삐뚤빼뚤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상도동 집을 얻으며 마당 한쪽에 석류를 심는다.

죽음을 배웅하는 동네라 해도 우리는 삶의 씨앗을 남겨야 한다.

터져야 알이 드러나듯 흩어져야 새로운 날이 올 것이다.

아이가 이 나무를 기억하길.”

짧은 문장이었지만 모든 게 담겨 있었다. 석류나무는 우연히 심어진 게 아니었다. 부모님이 혹은 그 이전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남긴 삶의 다짐이었다. 상도동이 상여꾼들의 동네라 죽음의 기운이 짙게 배어 있었기에 오히려 더 절실하게 삶을 이어가는 상징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흑백 사진 속 마당 모서리에 어린 석류나무가 심겨져 있었다. 아버지의 손이 삽을 쥐고 있었고 옆에서 엄마가 웃고 있었다. 그 옆에 어린 내가 있었다. 사진 속 나는 나무보다 작았다. 나무는 곧 나를 넘어설 것이고 나는 그 그늘 아래에서 자라날 것이었다. 사진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979년 봄. 새 출발.”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석류나무는 단순한 과일나무가 아니라 우리 집의 출발을 증언하는 기념비였다는 것을.

현재와 과거의 교차

나는 굳어버린 석류 알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었다. 색은 바랬지만 모양은 남아 있었다. 부모님이 봉투 속에 넣어둔 이유는 분명했다. 터져 흩어진 것들이 씨앗이 되어 이어지길 바란 것.

떠나던 날 내가 주머니에 넣었던 석류 알들과 닮아 있었다. 나는 그때 어린 마음으로 흩어짐을 두려워했지만 부모님은 흩어짐을 믿었던 것이다.

상도동은 죽음을 배웅하는 동네였다. 그러나 우리 집 마당의 석류나무는 그 죽음의 자리에 삶을 심는 일이었다. 나무가 터지고 열매가 흩어져도 해마다 다시 잎이 돋았다. 죽음을 넘어서는 가장 단순한 대답. 살아 있음.

 

나는 노트에 문장을 적었다.

“죽음을 배웅하는 동네에 심은 석류는 살아 있음을 선언하는 기념비였다.”

펜 끝이 떨렸다. 오랫동안 풀지 못한 질문에 답을 얻은 듯했지만 동시에 더 큰 울림이 밀려왔다. 석류나무는 단순히 나무가 아니라 가족이 남긴 유언이자 동네의 역사를 거슬러 세운 표식이었다.

나는 메모지를 접어 다시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조용히 다짐했다. 이 알갱이들을 이 이야기를, 다시 심어야 한다고.

노트의 다음 페이지에 제목을 썼다.

10부 — 씨앗을 심다.

 

10부 — 씨앗을 심다

나는 봉투 속에서 꺼낸 낡은 석류 알을 손바닥에 올려 두었다. 세월에 말라 굳어 돌처럼 변했지만 모양은 여전히 석류였다. 색은 사라졌지만 형태가 말해 주고 있었다. 이건 흩어져야 남는 것이라고.

빈터의 펜스 너머로 바람이 불어왔다. 풀들이 허리를 흔들었고 먼지가 빛을 머금어 반짝였다. 나는 노트를 덮고 천천히 봉투를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며칠 뒤 나는 작은 삽과 화분을 준비해 뒷마당에 섰다. 도시의 아파트 단지 한 구석 사람들이 잘 눈여겨보지 않는 공간이었다. 이곳이 상도동의 마당은 아니었지만 내가 발 디딘 현재의 땅이었다. 나는 삽으로 조심스레 흙을 파고 봉투 속 굳은 석류 알을 꺼내 흙 위에 올렸다.

삭류 알은 오래되어 싹을 틔우기 힘들지도 몰랐다. 그러나 중요한 건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심는 행위 그 자체였다. 흩어진 것이 남고 남은 것이 흩어져 이어지는 과정. 나는 손바닥으로 흙을 덮었다. 손끝이 흙에 닿자 어린 시절 마당에서 놀던 기억이 몰려왔다. 발바닥에 닿던 흙의 까끌거림. 여름 장맛비 뒤의 진흙냄새, 석류나무 그늘 아래 앉아있던 오후. 나는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잘 부탁해.”

나는 작게 속삭였다. 그 말은 씨앗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고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씨앗을 심는 순간 나는 과거를 흩뿌리고 미래를 다짐하고 있었다.

기억의 되살아남

삽을 정리하고 화분 앞에 앉아 있자 오래전 상도동의 풍경들이 겹쳐 들려왔다.

구멍가게 아주머니의 “덤이야”라는 목소리, 분식집 아주머니가 떠주던 매운 국물의 향, 만화방 평상 위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던 시간들. 연탄을 갈아 넣던 아버지, 창문에 맺힌 물방울을 지켜보던 나, 이웃과 나누던 김치 한 조각. 그리고 장례 행렬의 북소리, 곡소리.

그 모든 소리와 냄새가 섞여 화분 위 흙에서 피어오르는 듯했다. 나는 깨달았다. 상도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집은 없어졌어도 석류나무는 잘려나갔어도 그 모든 흔적은 내 몸과 기억에 살아 있었다. 씨앗을 심는다는 건 그 기억을 현재에 불러오는 일이었다.

 

며칠 뒤 나는 다시 상도동을 찾았다. 빈터는 여전히 펜스로 둘러싸여 있었고, 바람은 똑같이 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음이 달랐다. 나는 펜스 앞에 서서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상도동.”

죽음을 배웅하는 동네. 그러나 그 이름 속에는 늘 삶을 붙드는 힘이 있었다. 부모님이 석류나무를 심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터져 흩어져야 알이 남고 흩어진 알이 새로운 나무가 된다. 떠남과 흩어짐 속에서 삶은 이어진다.

나는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펜으로 천천히 적었다.

“흩어져야 남는다. 석류의 진실은 터짐 속에 있고 삶의 진실은 떠남 속에 있다.”

 

집으로 돌아와 화분을 바라보았다. 흙 위에는 아직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은 터져야 씨가 되고 씨는 묻혀야 뿌리가 된다.

나는 화분 앞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한 줄을 적었다.

“반짝이는 석류 알이 우리 집의 역사를 밝혀왔다. 이제 그 빛을 씨앗으로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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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나무 그 집 앞

  • 작가 : 박고은
1. 제목
  • 석류나무 그 집 앞
2. 기획의도
〈석류나무〉는 어린 시절 살던 상도동을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상도동은 옛날에 상여꾼들이 모여 살던 동네로, 삶과 죽음이 늘 맞닿아 있던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첫 집, 첫 골목, 첫 계절을 경험했습니다. 좁은 골목과 구멍가게, 분식집, 만화방, 그리고 공터에서의 놀이가 모두 나의 뿌리를 형성했습니다. 무엇보다 마당에 서 있던 석류나무는 한 가족의 삶과 공동체의 상징이자, 죽음이 드리운 동네에서 삶을 지켜내는 표식이었습니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흩어져야 남는다’라는 주제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석류는 터져야 알이 드러나고 알이 흩어져야 새로운 나무가 됩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 떠남과 남음, 개인과 공동체가 이어지는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상도동의 기억은 이미 사라진 공간이지만, 내 몸과 언어와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이야기를 쓰는 과정은 곧 사라진 장소를 다시 불러내는 의식이었습니다. 집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흩어졌지만, 그곳에서 자라난 기억은 새로운 씨앗이 되어 현재와 미래에 심어집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사라져 가는 동네와 소상공인의 삶, 그리고 공동체적 연대의 의미를 다시 환기하고자 했습니다.
3. 스토리
주인공 ‘나’는 어린 시절 살던 상도동을 성인이 되어 다시 찾는다. 집은 철거되고 펜스와 빈터만 남았지만, 발이 기억하는 경사는 여전히 몸을 흔든다. 현재의 ‘나’는 노트를 펴고, 기억 속으로 들어가 과거를 다시 걷는다.
어린 시절의 상도동은 좁은 골목과 구멍가게, 분식집, 만화방, 공터가 있던 곳이다. 아이들은 공터에서 축구를 하고 어른들은 장례 행렬을 배웅했다. 삶과 죽음이 같은 골목에서 공존했고, 그 풍경은 석류나무의 터짐과 겹쳐졌다. 겨울이면 연탄의 온기와 위험 속에서 하루를 버티고 이웃들과 반찬과 연탄을 나누며 살아갔다.
그러나 재개발 소문이 돌며 집은 철거되고, 가족은 이사를 간다. 이사가던 날, 이웃들은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골목을 빠져나오는 길에 또 하나의 장례 행렬이 지나간다. 석류나무는 마지막까지 붉은 알을 터뜨리며 흩어짐의 의미를 남긴다.
성인이 된 주인공은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껍질’을 갈아입는다. 새로운 집과 직장, 반복되는 이사 속에서 ‘남겨진 자리’의 의미를 배워간다. 그러나 결국 상도동으로 돌아와 빈터 앞에 서며 석류나무가 왜 그 자리에 심어졌는지 가족이 남긴 메모를 통해 알게 된다. 그것은 죽음을 배웅하는 동네에서 삶을 선언하기 위한 표식이었다.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석류 알을 흙에 심는다. 그 알이 살아날지 알 수는 없지만, 심는 행위 그 자체가 삶을 이어가는 증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