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놀이공원
-이번 역은 잠실역, 잠실역입니다.-
지하철의 안내방송이 들렸다. 나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하였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잠시 지하철의 문이 열렸다.
지이잉-
나는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 같이 내렸다. 잠실역은 여러 호선이 만나는 역인 만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서 어떻게 갔더라…’
기억을 더듬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잠실역의 지하광장을 지나서 주욱 걷자 교복대여점이 나왔다.
‘여기는 정말 오래가는 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잠실역 지하에 있던 많은 매장이 사라지고, 새로 생겼지만 놀이공원 입구 가까이에 있는 이 교복 대여점만은 리모델링을 했을 뿐 꾸준히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우리가 교복을 안 입어 봤었네’
그녀가 놀이공원을 꽤나 좋아했기때문에 우리는 잠실에 위치한 이 놀이공원에 자주 왔었다. 하지만 소위 젊은이들이 말하는 ‘교복 데이트’라는 것을 한 적이 없었다.
‘그 때 한 번 입어볼 걸 그랬나…’
이제는 나이가 너무 들었다. 노인이 교복을 입어봤자 괴상하기만 하겠지. 그리고 이제는 그녀도 있지 않았다.
나는 교복 대여점을 지나쳐걸었다. 곧 놀이공원의 입구가 나왔다. 지금 학생들은 한창 학기 중인 시기이고, 또 평일인지라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성인 한 명 맞으신가요?”
직원이 나에게 다시 한번 더 물었다. 아마 혼자서, 그것도 노인이 혼자서 놀이공원에 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닌지라 되물은 것이리라.
“예, 성인 한 명 맞습니다.”
“아…! 네 즐거운 시간 되십쇼!”
나는 표를 찍고 놀이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와 수 없이 다녔던 놀이공원.
또한, 그녀와 처음 만났던 놀이공원이었다.
***
“소개받아볼래? 내가 아는 후배가 하나 있는데…”
대학을 다니던 시절, 내 친구는 나에게 뜬금없이 여자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하였다. 아니, 사실 뜬금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연애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어쨌든 친구는 나에게 여후배를 소개시켜주었다. 그녀는 나보다 한 살이 어렸으나, 재수를 하였기에 학년은 두 학년 밑이었다. 또한 그녀는 학업에 나름 열심인 학생이었다. 학점도 언제나 4점을 넘었고…
휴대폰 메신져로 연락을 주고 받던 우리는 처음 만날 장소를 정했다. 나는 그녀가 카페에 가거나, 서점 같은 곳을 가는 것을 즐겨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졌다. 학업에 열심인 것을 보고 내 멋대로 그녀를 상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처음 만날 장소로 제시한 것은 아주 뜻밖인 곳이었다.
“혹시 놀이공원 좋아하세요?”
나는 그녀의 메세지에 “놀이공원 신나고 재밌죠!” 라고 답하였다. 하지만 사실 나는 놀이공원처럼 활동적이며 소란스럽고 사람까지 많은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만나기 위해 좋아하는 척 하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울의 놀이공원에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
.
.
놀이공원의 입구에서 본 그녀는 꽤 예뻤다. 아마 그 때부터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을 까.
“안녕하세요?”
우리는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어… 저희, 어디부터 가볼까요”
“저희 자이오드롭 탈까요!”
이런.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놀이기구였다.
“네, 가시죠!”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심정과는 달랐다. 그렇게 우리는 자이오드롭 앞에 줄을 섰고, 그 줄이 줄어들 때마다 내 수명도 줄어드는 듯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쿵쾅대는 심장이 무서워서 그런 것인지, 설레서 그런 것인지 뇌가 착각을 한다는 것을 들었다. 그것을 흔들다리 효과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때 나는 내 심장이 쿵쾅대는 이유를 확실히 알았다. 그건 분명히 무서워서 쿵쾅대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자이오드롭에 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으나 그녀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지잉-
기구가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점점이 멀어지는 사람들, 시원하게 불어대는 높은 곳의 바람. 놀이공원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
그 모든 게 감각에 들어왔다. 차마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눈을 감으면 정말로 더 무서웠다.
드디어 자이오드롭이 꼭대기에 다다랐고, 세상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철컹-
무언가 잡아두었던 기계가 풀리는 듯한 소름끼치는 소리.
붕-
잠깐의 부유감. 그리고 추락.
“끄으으으윽…!”
사람들이 놀이기구를 탈 때 외치는 비명의 이유가 공포라 생각했다면 정말 큰 착각이다. 비명은 기쁨의 함성이다. 진짜 공포에 질린 반응은 이처럼.
“끄으으어어억…!”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하고 끅끅 거리는 것이다.
후와앙-!!
영원같았던 찰나가 끝났다.
“흐허억!”
막혔던 숨이 터져나왔다.
“재밌다! 그쵸?!”
옆에서 그녀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치익-
안전바가 올라가고, 우리는 기구에서 내려왔다.
휘청-
힘이 풀린 다리 때문에 몸이 잠깐 비틀거렸다.
“괜찮아요?”
“네! 재밌네요! 하하하!”
나는 애써 괜찮은 척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그쵸? 그쵸? 이거 한 번 더 탈까요?”
“….예! 가시죠!”
나는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다. 그녀는 놀이기구타는 것을 정말 좋아했고, 한 번 탄 걸 몇 번을 다시 타도 즐거워하는 성격이었다. 하필 그날 따라 놀이공원에 사람도 많이 없어서 우리는 정말 수없이 많은 놀이기구를 타게 되었다. 저녁 즈음이 되었을 때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나중에 들었을 때, 그녀는 내 표정이 좋지 않아서 자기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줄 알았다고 하였다. 실상은 단지 내가 너무 지쳤던 것 뿐이었지만.
저녁 무렵, 우리는 놀이공원 근처에 있는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온종일 놀이기구를 타느라 기진맥진한 나의 눈에는 무엇이든 밥상이면 반가웠다. 나는 돈까스를, 그녀는 카레 우동을 시켰다.
나는 거의 허겁지겁 돈까스를 잘라 입에 넣었다. 고소한 소스 맛과 함께 속이 든든해지는 느낌이 퍼졌다. 그러나 카레우동을 먹는 그녀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맛이 별로인가요? 다른 거 시켜서 먹을래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러나 그녀는 카레우동을 몇 젓가락 먹고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그저 배가 불러서 그런 것이라고 하였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 때 카레우동을 정말 맛이 없었다고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그녀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아…”
발목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발이 아프신가요?”
“네? 아뇨 그게 아니라…”
말하다 말고 그녀는 갑자기 부츠의 밑창을 뜯어버렸다.
두두둑-
“…?”
내가 순간 당황하여 아무말도 못하고 있을 때 그녀가 말했다.
“부츠의 굽이 떨어져서 덜렁거리고 있었어요. 이제야 좀 편하네요!”
첫 만남에 신발 밑창을 뜯어버리던 그 모습은 머리 속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그녀는 밑창이 뜯어진 신발로도 참으로 씩씩하게 걸었다.
“괜찮아요?”
내가 묻자, 그녀는 오히려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아까보다 훨씬 걷기 편하네요!”
놀이공원을 나와 천천히 걷는 길. 밤바람은 적당히 시원했고, 도심의 불빛은 멀어별처럼 빛났다. 우리는 그저 나란히 걷고 있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혹시 거북이 밥 먹어본 적 있어요?”
나는 순간 멈칫했다.
“거북이 밥을요…?”
“네. 그… 키우는 거북이가 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냥...”
나는 엉뚱한 그녀의 질문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너무 아무 말 없이 걷고, 표정도 안 좋아서(놀이기구를 타느라 지쳐있었다.) 분위기를 풀고자 아무말이나 던져본 것이라고 하였다.
***
“허허허…”
옛날 생각을 하니 작게 웃음이 나왔다.
후와앙-!
“꺄아아아악!”
자이오드롭이 떨어지며 바람이 확 하고 불어왔다. 이제는 정말 놀이기구를 타는 게 쉽지 않은 나이인지라 나는 벤츠에 앉아서 그저 사람들이 놀이기구를 타는 것을 구경할 뿐이었다.
우리는 첫 만남 이후로도 정말 이 놀이공원을 지겹도록 왔었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그녀와의 기억이 잔상처럼 떠올랐다.
빠바밤~
“하하하하!”
스피커에서는 밝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만큼 밝은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우리도 한 때는 저 밝음에 속해있었을 테지.
“더 많이 올 걸 그랬구나”
지겹도록 다닌 놀이공원이지만. 이제는 자이오드롭이 무섭지 않을 정도로 많이 탔지만.
그래도 더 많이 올 걸 그랬다. 그래서 그녀에 대한 더 많은 기억을 머릿속에 담아둘 걸 그랬다.
홀로 놀이공원에 간 노인이 벤츠에 우두커니 앉아서 기억을 곱씹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나는 놀이기구는 하나도 타지 않고 공원을 나왔다. 놀이공원 옆에 있는 작은 식당가에서 대충 배를 채웠다. 그 때 먹은 돈까스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카레 우동을 파는 식당도 없었다.
“한 번 먹어볼 걸 그랬나…”
그녀는 음식을 가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남길 정도면 도대체 무슨 맛이었을 지 궁금했다.
저녁을 먹은 나는 지상으로 올라왔다. 해는 저물어서 도시의 야경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그 때도, 지금도 야경은 그대로였다.
그 때와 같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손 끝을 스치는 그 바람을 느껴보려고 두 눈을 감았다.
이제는 맞잡을 짝이 없는 손은 바람이라도 잡으려 움찔거렸으나, 바람을 그저 손 끝을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이제 가야겠구나.”
이제 집에 가야할 시간이었다.
“갈 때는 버스를 타 볼까…”
야경도 볼 겸.
버스에 탄 나는 창가에 앉아 도시를 구경했다.
“오늘도 재밌었다! 그치? 사람도 많이 없었어!”
“아 아쉬워! 오늘은 많이 못 탔어…!”
“휴..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예전처럼 많이 타지는 못하겠네”
“그 때, 나 카레우동 먹은 거 기억나? 사실 그 때…”
놀이공원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신이나 재잘거렸다. 그 목소리를 다시 들으며, 집에 돌아갔다.
“재밌었지 오늘도.”
“다음에 더 많이 타자.”
“놀이기구는 많이 못탔어도, 놀이공원만의 그 신나는 분위기가 좋았잖아?”
“카레우동보다 더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주변 사람들의 의안한 시선이 느껴졌다. 웬 노인이 혼잣말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보는 것이겠지.
그 때 더 많은 이야기를 할 걸 그랬다. 나도 같이 재잘거릴 걸 그랬다.
놀이공원은 나에겐 지나치게 활발한 곳이라서, 돌아갈 때 쯤엔 항상 지쳐서 축 쳐져 있었다.
아마 그녀는 이런 쳐진 분위기가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더 재잘거렸겠지.
덕분에 내가 기억하는 서울은 언제나 밝았더랬다. 그녀의 재잘거림으로, 그녀의 밝음으로 내 추억은 언제나 반짝인다.
“내일은…”
내일은 또 어디를 가볼까.
반짝이는 추억을 더듬으며, 반짝이는 야경을 바라보며 나는 혼잣말을 뱉었다.
마치 대화를 하는 누군가라도 있는 것처럼.
이것이 혼잣말이라는 것은 애써 무시하며.
2화-아쿠아리움
-이번 역은 잠실역, 잠실역입니다.-
다시 온 잠실. 그러나 이번에 갈 곳은 놀이공원이 아니었다. 오늘 갈 곳은 아쿠아리움이다.
놀이공원이 그녀가 좋아해서 자주 갔던 곳이라면, 아쿠아리움은 내가 좋아해서 자주 갔던 곳이다. 나는 땅에 사는 것이든, 물 속에 사는 것이든 동물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지잉-
지하철 문이 열리고, 잠실역에서 내렸다. 오늘은 10번 출구가 있는 방향으로 지하통로를 따라 주욱 걸었다.
이렇게 가다보면 여러 매장이 보였다. 옷 매장도 있고, 조각 피자를 파는 곳과 어묵을 파는 곳도 있었다. 나는 과거 빵집이 있던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지금은 그 빵집은 사라지고 다른 매장이 들어서 있었다.
우리는 예전에 이곳에 있던 빵집에서 소금빵을 자주 사먹었었다.
“여기 소금빵 되게 싸게 판다!”
이곳을 지나다가 그녀가 한 말이었다. 그 뒤로 우리는 아쿠아리움에 갈 때마다 이곳에서 소금빵을 사먹었다. 난 사라진 빵집에 아쉬움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그런데 조금 걷다보니 새로운 빵집이 나타났다. 고소한 빵냄새가 느껴졌다. 난 걸음을 멈추고 진열된 빵들을 훑어보았다.
‘소금빵이 있네.’
난 소금빵 두 개를 사 손에 들었다. 소금빵은 따뜻했고 갓 구운 듯한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난 걸으면서 소금빵 하나를 꺼냈다. 부드러운 크루아상 위에 점점이 뿌려진 하얀 소금들.
“난 이게 맛있던데!”
그녀는 그리 말하면서 이 소금이 뿌려진 부위만 뜯어먹었다. 그리고 남은 빵부분을 내게 불쑥 내밀곤 했다.
우리는 음식 취향이 서로 다르면서도 은근히 잘 맞았다. 난 아무것도 들지 않은 본연의 빵 종류를 좋아했다. 예를 들어, 그녀는 피자의 끝부분. 그러니까 크러스트라고 불리는 부분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그 부분을 좋아했다. 바게트빵과 비슷한 맛이 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소금이 떨어진 소금빵은 그냥 부드러운 빵이었고, 난 그 맛을 좋아했기에 그녀가 불쑥 내민 빵을 기쁘게 받아먹었다.
난 그녀가 맛있게 먹던 모습을 떠올리며, 소금이 뿌려진 부분을 찢어 입에 넣었다.
우물 우물.
‘짜군.’
내 입맛에는 전혀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난 빵을 삼키고는, 소금이 없는 나머지 빵부분을 입에 넣었다.
부드럽게 찢어지는 빵과 풍겨오는 고소한 냄새.
쫄깃한 듯 부드러운 식감.
역시 이 맛이 좋았다.
나는 아쿠아리움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면서 두 개의 소금빵을 모두 먹어치웠다.
아쿠아리움의 앞에는 큰 상어 인형이 서 있었다. 같은 디자인인 다른 인형으로 바꾸는 건지, 따로 청소를 하는 것인지 그 인형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인형은 털의 방향에 따라 색의 음영이 달라졌다. 그녀는 그것을 이용해서 상어의 이마 쪽에 하트를 그려넣곤 하였다.
“자기야! 조금 더 이쪽으로!”
한 커플이 상어 인형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젊은 남자가 맨 바닥에 무릎까지 꿇어가며 제법 열심히 여자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그러고보니까 우리도 저기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을텐데…’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첩을 뒤졌다.
한참을 내리고는 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파란 상어인형의 지느러미를 마치 손이라도 잡은 것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
주름 하나 없던 젊은 시절의 모습이었다. 사진을 보는 나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어떻게 나왔어?”
사진을 다 찍었는 지 젊은 커플은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혹시 사진을 한 장만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찍어드릴게요!”
흔쾌히 허락해주는 커플이었다.
나는 상어 인형의 옆에 섰다. 그리고 그녀가 했던 것처럼 상어의 지느러미를 손을 잡듯이 잡았다.
“오! 이 포즈 좋네요!”
“나도 이렇게 찍어볼래!”
젊은 커플이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찰칵!
“아이고 감사합니다.”
“앗 한장만 찍으시게요? 더 찍어드릴게요!”
“한장이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아…! 네! 여깄습니다!”
휴대폰을 돌려받은 나는 찍힌 사진을 보았다. 젊은 시절의 나보다 사진을 찍는 실력이 훨씬 좋았다.
‘나도 더 열심히, 더 많이 사진을 찍어줄 걸…’
약간의 후회가 밀려왔다.
“잘 나왔네요. 감사합니다.”
그들에게 인사를 하곤 아쿠아리움의 입구로 향했다.
삑-
연간권을 찍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 아쿠아리움 연간권의 존재를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는 두 종류의 연간권을 구매했었다. 놀이공원과 아쿠아리움이다.
“1년에 10번만 가도 완전 이득인 가격이야!”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속으로, ‘놀이공원을 1년에 10씩이나 간다고?’ 라고 생각했던 것은 비밀이다. 나를 위해서 아쿠아리움도 놀이공원만큼 많이 갔으니까.
연간권을 산 우리는 놀이공원과 아쿠아리움을 지겹도록 많이 갔었다. 물론 말이 그렇단 거지 놀이공원과 아쿠아리움이 지겨웠던 적은 없었다. 물론 놀이공원을 간 날은 정말 푹 잘 정도로 체력 소모가 크긴 했지만.
아쿠아리우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작은 물고기들이었다. 그것들은 두꺼운 유리창 너머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난 몇 번을 읽어도 다시 까먹는 안내판을 읽었다. 거기에는 물고기의 이름과 간단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그리고는 몇 분동안 물고기들을 관찰했다. 작은 물고기들은 대부분 같은 방향으로 헤엄치는 특서이 있었다.
내가 이렇게 관찰할 때면, 그녀는 말 없이 나를 기다려주곤 했다. 그리고 내가 걸음을 옮길 때 맞춰서 따라와주었다.
작은 물고기들을 지나면, 큰 수조가 나왔다. 뚜껑이 없는 이 수조에는 빨판 상어와 가오리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이것들은 물의 윗부분까지 올라오기도 해서, 얼굴을 가까이 대고 보는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하였다.
“꺅!”
그녀도 이것들을 보다가 놀랐었다.
“방금 쟤가 엄청 가까이까지 왔었어! 완전 닿는 줄 알았어!”
“진짜? 그렇게 위로 올라온다고?”
나는 그렇게 말하곤, 그것들을 유심히 관찰했는데 진짜로 윗부분까지 올라와서 나도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으억!”
“으히히 봐바! 내 말 맞지?!”
그 때의 일을 떠올리고 있는데, 우리 처럼 놀라는 사람들은 지금도 있었다.
“으억! 깜작이야!”
그 수조를 지나면 코너가 있고, 그 코너의 바로 오른 쪽 벽에는 악어가 있었다.
이 아쿠아리움에서 유일하게 악어를 볼 수 있는 곳이고, 또 아쿠아리움의 초반에 있어서 사람들이 붐빌 것 같지만 의외로 이 악어를 오래 지켜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에이 뭐야 모형이네.”
그 악어가 워낙 움직임이 없어 사람들이 모형으로 착각하고 그냥 지나치곤 했기 때문이다. 그녀도 처음 이 아쿠아리움에 왔을 땐 저 악어를 보고 모형이라고 생각했었다.
“안 움직여! 모형인가 봐!”
“모형을 굳이 유리창 안에 물까지 채워넣어서 전시를 할 것 같진 않은데…”
“하지만 안 움직이는 데!”
그 때 나는 분명 악어가 눈을 꿈벅이는 것을 보았고, 저것은 모형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뒤로도 이 아쿠아리움을 수도 없이 온 우리는 이 악어가 느릿 느릿 물속을 걷는 모습, 육지로 올라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오! 움직여! 움직인다!”
마침 오늘도 악어가 그 귀한 몸을 움직여주었고, 사람들은 그것이 모형이 아니었단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코너를 돌아 앞으로 가면, 동그란 통 안에 찐빵같은 개구리가 있었다. 보통 개구리는 팔짝 팔짝 뛰어다니는데 이 개구리는 도저히 그럴 수 없게 생겼다. 사람이 먹이를 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이 생긴 이 개구리가 야생에서는 대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개구리를 지나면 반수생거북이가 담긴 통이 있다. 거북이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은 통 앞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기다려줬고, 또 호응도 해주었었다.
“자기가 키우는 거북이랑 달라!”
“응! 다른 종이거든. 내가 키우는 건 커먼머스크 터틀이고, 얘는 레이저백 머스크 터틀이야.”
“오 그렇구나!”
그녀의 입장에서는 딱히 재미가 없을 거북이 얘기였지만, 그 때 나는 내가 키우는 거북이와 여기 있는 거북이를 비교하며 신나게 떠들어댔었다.
나는 거북이를 지나 많은 물고기를 보고, 해파리와 문어도 보았다. 꼬리를 감고 자고 있는 해마도 있었고.
순서를 따라가다보면, 잉어들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잉어들은 매우 전투적으로 사료를 먹는데 그 모습은 살짝 징그럽고 무섭기까지 할 때도 있었다.
“꺄악!”
그녀도 멋모르고 사료를 주다가 저렇게 기겁한 적이 있었다. 나도 추억을 떠올릴 겸 잉어사료를 사서 녀석들에게 뿌려주었다.
푸다다다닥!
잉어 수십마리가 모여들어 엎치락뒤치락하며 사료 쟁탈전을 벌였다.
“아이고…”
작은 물고기나 거북이가 먹는 모습은 귀여운데, 이 잉어들은 영 귀엽지가 않았다. 그래도 이 체험이 꾸준히 있는 이유는 이런 전투적으로 먹는 모습을 보려고 사료를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겠지.
.
.
.
옛날에는 이곳에 엄청 큰 돌고래가 있었다. 벨루가라고 하였던 것 같은데…
그 때 곧 자연으로 돌려보낼 것이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하지만 벨루가는 이 아쿠아리움의 명물이었기 때문에 계속 여기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쿠아리움은 정말로 벨루가를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그래서 지금 이 큰 유리창 안 쪽에는 그 때보다 작은 돌고래 살고 있었다.
“엄마! 돌고래야!”
어린 아이가 돌고래를 가리키며 엄마를 불렀고, 그런 어린 아이의 모습을 오히려 돌고래가 관찰하고 있었다. 지능이 높은 동물이라 오히려 저렇게 사람을 관찰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벨루가도 유리창에 붙어서 구경하던 그녀를 오히려 관찰하곤 했었다. 그녀가 손을 위로 쭉 뻗고 만세하듯이 손을 위로 올렸다내리면, 벨루가가 거기 맞춰서 고개를 끄덕거렸었다.
서로 상호작용하는 그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그녀의 동작을 따라하기도 했었다.
난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돌고래 앞에서 손을 위로 번쩍 들었다내렸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돌고래는 그저 멀뚱히 나를 지켜볼 뿐이었다.
이상한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이상한 사람이다.”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쉿. 가까기 가지마”
아이 엄마의 목소리도.
“크흠.”
창피해진 나는 손을 내리고 슬그머니 걸음을 옮겼다. 분명 그 때 돌고래는 그녀의 손동작에 맞춰서 인사하듯, 혹은 춤추듯이 고개를 끄덕거렸었는데…
돌고래도 사람을 가리는 것 같았다. 하긴 그녀도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나는 거북이가 밥먹는 것을 구경하듯이 그녀와 밥을 먹을 때 그녀를 구경하곤 했었다.
그녀가 밥을 먹을 때는 묘하게 해달이 떠올랐다. 해달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동물인데, 그녀를 보면 조개를 탕탕 두들겨 깨먹는 해달이 떠오르곤 했다.
그 때의 돌고래 벨루가도 그녀를 보면서 해달을 닮았다고 생각했을까.
‘그러고보니 여기 해달과 비슷한 친구가 있었지…’
나는 걸음을 옮겼다.
3화-아쿠아리움(2), 석촌 호수
밑으로 내려가면, 보다 다양한 물고기를 볼 수 있었다. 특히 여기 있는 이 복어는 상당히 귀여운 물고기다. 정면에서 보면 몸에 약간의 각이 있어서 두툼한 네모처럼 보였다.
평소에서 몸이 부풀어진 것처럼 생긴 복어. 나는 이 복어가 화가 난 것을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까 가시를 한껏 세우고 빵빵하게 풍선처럼 된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이 아쿠아리움에 수십 번을 왔지만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이곳에서 저 복어가 화낼 일이 전혀 없을 정도로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부풀지를 않는 복어 종인 것인지.
이 복어가 부풀어오른 모습 한 번 보겠다고 그녀와 이곳에서 한참동안 죽치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역시나 오늘도 복어는 부풀어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만 포기하고 걸음을 옮겼다. 가장 큰 수족관이 있는 곳으로.
벽 한 쪽 전체가 거대한 통유리로 되어있고, 그 너머에는 상어와 큼직한 가오리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군체를 이루어 유영하는 작은 물고기들도 보였다.
이곳은 포토존이기도 하여서 사람들이 줄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제는 아예 직원이 관리하는 사진 구역이 생길 정도였다.
가오리 하나가 유리창을 타면서 헤엄을 쳤다. 드러난 가오리의 밑면은 흰색이었다. 가오리의 입은 위로 올라가있고, 콧구멍인지 뭔지 점이 두개 찍혀 있었는데 꼭 스마일 이모티콘 같은 모양이었다. 저 점 두개가 눈이었다면 정말 웃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가오리의 눈은 위 쪽에 따로 있었다.
수족관에는 상어가 한 입에 먹을 정도 크기의 물고기가 잔뜩 있었다. 하지만 상어가 그 물고기를 잡아먹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이곳의 직원들이 따로 먹이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상어가 다른 상어의 지느러미를 콱 물어버리는 것을 본 적은 있었다. 심지어 동영상으로 찍기까지 하였다.
그녀가 저 통 유리 앞에 서고 나는 그녀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동영상으로 찍고 자연스럽게 여러모습을 취하면 그 중 좋은 부분을 캡쳐하여 사진처럼 쓰는 것이다.
물고기를 잡아먹는 척, 상어와 싸우는 척 등 다양한 포즈를 취하던 그녀의 모습을 휴대폰에 담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뒤에 있던 상어가 갑자기 다른 상어의 지느러미를 콱 물어버린 것이다!
물린 상어는 거품을 일으켜 파닥 거리고 도망갔다.
워낙 순식간이라 본 사람이 많이 있진 않았다. 그녀도 카메라 방향으로 서 있어서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장면은 그녀를 찍고 있던 내 휴대폰에 분명히 담겼고, 그녀와 나는 그걸 두고 정말 희귀한 장면을 찍었다며 한참을 들떠서 떠들어댔었다.
“여기 상어들은 다 착한가봐!”
남자아이가 상어들을 보며 하는 말이었다.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 거대한 유리창의 옆을 지나서 주욱 들어가면 바다거북이가 나온다. 거북이를 좋아하는 나는 당연히 이곳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거북이의 입은 새 부리와 은근히 닮아있다. 새 부리처럼 딱딱하기도 했다.
내가 키우던 반수생 거북이와 바다거북과의 차이점은, 일단 크기였다. 바다거북이는 정말 사람을 끌고 헤엄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컸다. 또한 발을 가진 반수생거북과 달리 바다거북은 날개처럼 생긴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지느러미로 날개짓하듯이 물 속을 헤엄쳐다녔다.
이곳에는 바다거북말고도 빨판 상어와 다른 물고기들도 있었는데, 빨판 상어는 아마 로봇청소기 같은 느낌으로 넣어논 것이지 싶다. 바닥과 유리창에 붙어다니면서 이끼를 청소해주기 때문이다.
의아한 것은 이 노란색 물고기들인데, 놀랍게도 상어와 달리 바다거북은 이 물고기를 확실이 먹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어? 저기 거북이가 물고기를 잡아먹으려고 하고 있어!”
가까이의 기포기에서 거품을 갖고 노는 거북이에 정신이 팔려 그것만 한참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가 손가락으로 안 쪽을 가리키며 한 말이었다.
그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려보니, 정말로 거북이 하나가 입을 벌리고 노란색 물고기를 쫓고 있었다.
그런데 이 거북이는 절대 물고기보다 빠르지 못했고, 사냥의 경험이 없는지 무작정 물고기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사냥에 성공하려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할 텐데 말이다.
어쩌면 거북이라는 종 자체가 사냥을 잘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키우던 거북이도 어항 안에 같이 있는 새우를 잡아막으려고 막 쫓아다니곤 했으니까. 물론 한번도 사냥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내가 주는 사료만 열심히 먹었지.
나는 한참동안 거북이를 보다가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는 바다사자와 물범들이 있는 곳이었다. 바다사자는 생각보다 훨씬 큰 동물이다. 육지의 사자보다 더 크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그보다 한참은 작은 물범들은 배가 통통하니 귀엽게 생겼다. 그녀가 한창 살이 올라 볼살이 통통해졌을 때, 나는 이곳에서 그녀에게 물범과 닮았다면서 놀렸었다. 그녀는 그 말에 웃으면서 물범 옆에서 비슷한 포즈를 취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았고.
여기 있는 물범은 행동도 귀여운 구석이 있다. 바다사자가 육지에 올라와 있으면 물속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는 다시 들어간다. 그렇게 바다사자를 힐끔거리다가 바다사자가 육지에서 내려가면 그제서야 육지로 올라서는 물범들이었다.
수영을 잘하는 것 같으면서도 허당끼가 있어서 가끔 바닥에 부딪히기도 하였다. 바닥에 통통한 배를 퉁- 하고 부딪혔다가 올라오는 물범을 보곤 탱탱볼 같다면서 그녀와 한참을 웃기도 했었다. 그녀의 뱃살을 만지면서 저 물범처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을 때는 정색하면서 내 손을 쳐내기도 했지만.
이 아쿠아리움에 뱃살이 통통한 동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펭귄이다. 펭귄들은 자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기도 하고, 물 속을 헤엄치기도 하는데 물 속에서 헤엄칠 때는 그 속도가 정말로 빨랐다.
운이 좋으면 사육사가 나와서 펭귄들에게 밥을 주는 것을 구경할 때도 있었다.
나는 가장 마지막으로 수달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갈색 털을 가진 이곳의 수달은 주로 모여서 잠을 자고 있었다. 물론 일어나서 헤엄을 치거나 육지를 달리면서 노느 모습도 자주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해달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자주했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그 말을 기억했는지 나에게
“내가 저거를 닮았어? 귀엽네!”
라고 말했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사실을 말해주었다.
“아니야. 저건 수달이라는 거고, 해달은 다르게 생겼어. 회색빛 털에 더 멍청하게 생겼어. 뭔가 똑똑하고 총명하게 생겼으면 수달이고, 약간 인상이 흐리멍텅해서 조개 뺏겨도 어어 거리고 아무것도 못할 거 같이 생겼으면 해달이야.”
“…멍청하게? 흐리멍텅? 내가 그렇게 생겼어?”
나는 이 자리에서 해달의 사진을 보여주며 수달보다 해달이 더 귀엽다고 한참을 설명해야 했다.
수달들이 노는 것을 잠깐 구경하고는, 그 옆에 있는 출구로 나갔다. 출구로 나가면 바로 기념품매장이 있었는데 놀이공원과 똑같은 판매전략이라고 생각했다.
“…해달이 있네.”
이 기념품 매장에는 수달 인형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조개를 들고 있는 해달인형도 있었다. 순간 이 아쿠아리움에 해달이 없는데, 왜 해달인형을 팔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옆에 기린이나 사자 피규어까지 파는 것을 보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아쿠아리움을 나섰고, 내 손에는 해달 인형이 한 개 들려있었다.
***
아쿠아리움이 있던 곳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면 가까이에 석촌 호수가 있다. 석촌 호수에는 벚꽃나무가 잔뜩 심겨져 있어 봄마다 우리는 이곳에 와 사진을 찍었다.
봄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분홍 꽃들은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그녀는 그 풍경을 보면서 이 근처의 아파트는 분명 더 비쌀 것이라는 감상평을 남겼었다.
우리는 봄에 이 석촌 호수에서 벚꽃 가지가 가장 밑으로 내려와 있는 곳을 찾겠다면 여러 번을 돌았었다. 마침내 발 뒤꿈치를 들고 손을 한 껏 위로 뻗으면 벋꽃 잎이 손 끝을 살짝이라도 스치는 가지를 찾아냈고 우리는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물론 그 벚꽃에 손 끝이 스치는 사람은 나였고, 키가 한참 작은 그녀는 벚꽃에 닿은 모습을 사진에 남기겠다고 열심히 점프해대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그러고도 지친 기색이 없었는 데, 역시 놀이기구를 여러 번 탈 정도의 체력이 어디가지 않는 구나 싶었다.
나는 그 때를 떠올리며 해달 인형을 들고 석촌호수가 보이게 사진을 찍었다.
찰칵-
.
.
.
털썩.
근처의 대형마트에서 초밥을 사와 석촌호수가 보이는 벤츠에 앉았다. 그녀는 이렇게 먹는 것을 좋아했다. 밖에서 좋은 풍경을 보면서 먹는 것을.
아니 어쩌면 그녀는 좋은 풍경보다 그냥 밖에서 먹는 것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비가 엄청 쏟아지던 어느 날, 정자 아래에서 눅눅한 치킨을 먹으면서도 그녀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이런게 낭만이지!!”
“푸흐”
그 때를 떠올리니 실 없는 웃음이 나왔다.
나는 석촌 호수를 바라보며 초밥을 입에 넣었다. 생선살의 고소한 향이 입가를 맴돌았다. 아쿠아리움을 다녀온 직후라 그런지 더 싱싱하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이번에서 손 끝으로 그 바람을 느꼈다. 어쩌면 그녀는 풍경보다 이 바람을 더 좋아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태풍인가 싶을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도 그녀는 웃으면서 좋아했었으니까.
“꽥 꽥”
멀리서 야생오리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석촌호수에는 갈색 털의 오리가 헤엄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호수 한 가운데서 주로 헤엄을 쳐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 저것이 청둥오리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까이서 보면 초록 빛깔의 깃털도 보이지 않을까.
우물 우물.
처음에는 간장에 와사비를. 그 다음에는 초장을. 번갈아 가며 찍어먹었다.
나는 광어를, 그녀는 연어를 좋아했는데 소스는 똑같이 간장 와사비를 좋아했었다. 우리는 이렇게 다른 듯 맞았다.
확실히 적막한 집에서 혼자 먹는 것보다 밖에서 먹는 것이 더 맛이 좋았다.
좋은 풍경 때문인지, 불어오는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가 말하던 낭만이라는 것이 조미료가 되어주는 것인지.
어디 해외에 간 것도 아니고, 이런 대도시 서울에서조차 낭만을 찾을 수 있던 그녀 덕분에 내 추억도 꽤나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역시 그 때 그녀와 같이 먹었던 것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똑같은 대형마트 초밥일텐데 그랬다. 내 입 맛이 그 때보다 까다로워진 걸까, 초밥의 질이 안 좋아진 걸까.
사실 정답을 알고 있었다. 나 혼자 먹기에 그런 것이지.
낭만 타령을 하며, 무엇이 그리 신나는 지 재잘재잘 얘기하던 그 목소리가 조미료였다.
우물 우물.
나는 초밥을 씹으며 그 추억을 곱씹었다. 추억은 고소한 맛이 났다.
4화-안산, 한강과 자전거
“우리 등산가자!”
등산. 놀이공원보다 훨씬 체력소모가 심할 것 같은 활동이었다.
하지만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 여기저기 쏘다니며 뒷산에도 많이 올랐던 나이기에 등산은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흔쾌히 대답했다.
“그래! 가자!”
그렇게 우리는 서울에 있는 안산이라는 곳을 등산하게 되었다.
-케이블카 출발합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이렇게 산 정상까지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운행되는 덕분에 편하게 갈 수 있었지만.
케이블카는 정상 근처에서 멈췄고 나는 아주 조금 걸어서 정상에 올라갈 수 있었다. 정상에 있는 봉화대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있었다.
‘하긴 조선시대 때도 있던 봉화대니까…’
보수를 했겠지만 역사적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서 세월이 흘러도 봉화대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탁 트인 시야에 서울의 전경이 보였다.
‘그 때는 진짜 힘들었는데…’
그 때의 나는 등산을 아주 만만하게 생각했다.
서울. 도시에 있는 산이라는 생각에 시골 동네 뒷산 정도이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동네 뒷산보다도 등산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본격적인 등산을 하기 전에 홍제천을 따라 걸을 때까지는 좋았다.
인공폭포의 시원함도 느낄 수 있었고, 천에 사는 물고기와 물새들, 그리고 거북이도 볼 수 있었다.
산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도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의 동네 뒷산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허억 허억.”
그 생각이 깨진 것은 계속 이어지는 계단을 오를 때였다.
“허억! 확실히, 허억! 등산이, 허억! 운동이 되는구나!”
“그치? 그리고 나무그늘이 시원하지 않아? 우리 다음에 북한산도 가볼까?”
“북한산도? 허억!”
그 때 나는 그녀의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얼버무렸었다. 솔직히 또 등산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예상보다 많이 힘들기도 했고.
서울의 산도 확실히 산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은 바위로 된 길을 마주하면서 부터였다.
“허억! 이게 등산로라고? 허억!”
“응! 맞는데?”
‘이건 암벽등반 아닌가…?’
계단도 아니고 바위를 밟고 올라가야했다. 그 때 등산을 하면서 왜 계단을 정상까지 이어서 설치하지 않았는제, 바위 때문에 공사가 힘들었던 건지 여러 생각을 했었다.
나는 그 때 등산객들이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멋이 아니었다. 정말 안전을 위해서 지팡이가 필요했다.
‘이게 서울에 있는 산이라고?’
아무리봐도 저기 태백산맥 같은 곳이 있을 법한 등산로라고 생각했었다. 그 때 빌딩을 가득찬 도시 서울이라는 편견이 산산히 깨졌다. 서울은 확실히 자연과 공존하는 도시였다.
정말 힘든 등산이었지만, 정상에 올라와보니 사람들이 왜 그렇게 등산을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때 본 서울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저 높은 빌딩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솟아난 푸른 산들과 그 사이 사이에 지어진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그 풍경은 정말 묘한 것이었다.
나는 안산의 정상에 봉화대가 있는 것을 보고, 신이나 그녀에게 떠들어댔었다.
“우리나라가 봉화가 발달한 이유가 산이 많아서…조선시대에 파발보다 봉화가…거의 중세의 모스부호 어쩌구 저쩌구.”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재미 없는 얘기인데, 그녀는 고맙게도 참 잘 들어주었었다. 그리고 내려가는 길에 나는 그녀에게 아주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더 쉬운 다른 코스가 있었던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는 조금 더 여유가 생겨서 시원한 바람도 느껴보고, 숲의 풍경도 즐길 수가 있었다.
“여기 이런 낙엽을 들춰보면 장수풍뎅이나 사슴벌게 같은게….으악 개미다!”
작은 헤프닝도 있었지만.
‘그 때랑은 느낌이 다르네…’
등산을 하지 않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왔기 때문일까. 그 때 느꼈던 개운함. 가슴이 펑 뚫리는 시원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산과 도시가 공존하는 신비한 풍경은 그때도 지금도 여전했다.
***
오늘은 한강에 왔다. 강 근처에 가니 확실히 강의 냄새가 났다. 금속 난간, 젖은 흙, 잔디가 섞인 냄새였다.
따릉이 대여소가 보였다. 줄을 선 초록 자전거들. 휴대폰을 꺼내 앱을 열었다. 결제. 잠금 해제. 숫자판에 번호를 누르고, 손잡이를 꾹 당겨 자전거를 꺼냈다.
그때도 우리는 여기서 따릉이를 빌렸다.
나는 괜히 전문가처럼 타이어 바람을 눌러보고, 브레이크를 쥐어 보기도 했다. 그녀는 능숙하게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았다.
뒤에서 보는 그녀의 등은 가볍게 흔들렸다. 발목이 같은 리듬으로 돌았다. 자전거 도로 위 흰 선이 주욱 이어졌다. 나는 그 선을 따라갔다.
그녀는 자전거 타는 것을 꽤나 좋아했다. 환하게 웃으며 페달을 밟던 그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녀는 때때로
“내가 1등이다!!”
라고 외치며 페달을 마구 밟아 내 승부욕을 자극하곤 했다.
그럼 나 역시 페달을 마구 밟아서 그녀를 바짝 따라붙었다. 그렇게 우리는 신나게 자전거를 탔다. 한강변을 따라 한참을 자전거를 타다가 우리는 편의점에 들렸다. 우리는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사들고 한강이 보이는 벤츠에 앉았다.
후루루루룩!
한강을 보면서 먹는 라면은, 컵라면이라도 정말 맛있었다. 나는 국물은 반쯤 남기고, 삼각김밥을 풀어서 말아먹었었다. 특이하게 먹는 내 모습을 그녀는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았었다.
후룩-
“크아~”
라면 국물을 마시더니 그녀가 내뱉은 감탄사였다. 그녀는 라면 면보다 국물을 정말 좋아했다.
간단한 식사를 마친 후 나는 또 쓸데없는 말을 떠들었다.
“한강처럼 폭이 넓은 강은 세계 적으로 흔하지 않아. 유럽의 유명한 강들도 한강에 비하면 한참 작지.”
“아 진짜?”
“응 그래서 한강이~ 한강다리를 짓는 것도 강 폭이 워낙 넓어서~어쩌구, 유럽의 다른 강의 풍경보다 한강 풍경이 저쩌구…”
“그렇구나!”
그녀는 내 재미없는 이야기도 잘 호응해주었다.
우리는 그 벤치에서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종이컵과 젓가락, 라면 국물 자국, 바람에 젖은 앞머리. 사진첩 속 그날은 늘 낭만적이었다.
해가 조금 기울고 우리는 다시 달렸다. 다리 아래 그늘이 길어졌다. 쉼터를 지날 때 누군가의 기타소리를 듣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초등학생들도 보았다. 전동자전거를 타고 배달아르바이트를 가는 듯한 사람도 있었다. 강물엔 잔잔한 결이 있었다.
나는 조금 뒤에 가면서 그녀의 자전거 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휴대폰에 담았다.
한강과 자전거를 타는 그녀.
정말 잘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그녀는 내가 동영상을 찍는 것을 확인하고는 입으로 소리를 내며 핸들을 이리저리 돌렸다.
“슈웅~슈웅~”
초등학생 이후로 자전거를 타지 않았던 나는 그 뒤로 자전거를 타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물론 항상 그녀와 함께 탔지만.
오늘 나는 혼자 자전거를 탔다. 안장을 조금 낮추고, 페달을 천천히 밟았다. 예전만큼 빠르지는 않았다. 무릎은 금방 뜨거워졌다. 이제 예전처럼 그녀와 자전거 시합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나를 스치는 바람은 여전히 시원하고 기분이 좋았다.
조금 더 달린 나는 자전거를 멈추고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벤츠에 앉았다.
‘예전에는 몇시간이고 자전거를 탔었는데…’
나이와 세월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과거의 추억은 세월에도 변하지 않고 간직되어 있으니까.
휴대폰을 꺼내 그 시절의 사진을 찾아봤다. 자전거를 타는 그녀의 모습이 담긴 영상도 있었다.
“슈웅~슈웅~”
휴대폰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추억을 되새기는 것은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기분이 좋기도 하고, 이미 지나간 시간이라는 것에 우울하기도 했다.
휴대폰을 넣고, 다시 일어섰다. 속도를 아주 조금만 올렸다. 누군가 뒤에서 외쳤다.
“왼쪽 지나갈게요!”
나는 오른쪽으로 붙었다. 벨 소리가 짧게 울렸다.
딩-
아마 그 때의 그녀와 나는 저 사람보다 더 빠르게 달렸을 것이다.
가슴이 울렁거리며 아쉬움이 새어나왔다.
빠르게 달리기보다 오래 달릴 걸. 함께 더 많이 달릴 걸.
나는 가까운 편의점에 섰다. 물 한 병을 샀다. 뚜껑을 열어 두 모금 마셨다. 목이 시원해졌다. 이제는 몸이 예전같지 않아서 더 자전거를 타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느껴졌다.
휴대폰으로 따릉이 대여소의 위치를 확인하고, 천천히 자전거를 끌고 걸어갔다.
저벅 저벅.
붉은 노을이 하늘에서 길게 퍼져갔다. 그 만큼 한강에도 붉은 물감이 번져나가듯 색을 바꾸었다.
“우와! 구름 좀 봐바!”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했다. 그녀는 붉게 물든 하늘보다는 그 빛을 받아 분홍빛으로 빛나는 구름을 더 좋아했다. 솜사탕이 생각난다면서.
그녀 덕분에 서울의 하늘도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을질 무렾의 구름이 분홍색이라는 것도.
“저거봐! 거북이 구름이다!”
거북이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 거북이 모양 구름도 찾아주어었는데.
하늘을 보며 걷자 곧 따릉이 대여소가 보였다. 초록색 자전거가 줄 지어 서있었고, 사람들이 자전거를 반납하기도 하고, 새로 빌리기도 했다.
철컹-
나는 자전거를 비어 있는 거치대에 밀어 넣었다.
딸칵-
레버를 내리자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반납이 완료되었습니다.-
나는 앱에서도 반납이 되었는 지 확인했다.
반납을 제 때 못해서 요금폭탄을 맞은 뒤에 생긴 습관이었다.
자전거를 반납한 후에 걸어서 한강변으로 다시 돌아갔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한강변에 있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런닝을 하는 사람들. 가족과 마실을 나온 사람들.
일렁이는 한강이 물결을 따라 붉게 반짝였다. 보석이라도 담긴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따릉이를 타고 한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그 때보다 더 많이 활성화된 모습이었다.
우리는 따릉이를 참 많이도 탔었다. 한 번은 반납처리를 깜빡하는 바람에 더 많은 요금을 내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전부 추억이었다.
그녀와 함께 했던 건, 피곤했던 일도 전부 추억이 되었다. 놀이공원, 등산, 자전거…동적인 활동을 좋아하지 않던 나에겐 전부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혼자서 자전거를 탈 만큼 바뀌었다.
아마 분명 그녀 덕분에 내 몸은 더 건강해졌을 것이다.
오랜 시간 함께한 우리는 서로의 취향이 섞이고, 취미가 섞이며 닮아갔다.
그녀가 없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녀와 섞인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5화-월드컵 공원, 서울에너지드림센터
“허억… 허억…”
거친 숨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왔다. 무릎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깨끈은 자꾸 내려갔다.
나는 오늘도 자전거를 끌고 있었다. 손잡이 한쪽에는 동그랗게 접힌 원터치 텐트가, 반대쪽에는 장바구니가 달려 있었다. 등에는 배낭까지 메었다. 바람은 선선했지만 등에 맺힌 땀은 금세 식지 않았다. 바퀴가 작은 돌을 밟을 때마다 덜컹. 소리가 났다.
“허억… 허억…”
월드컵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조깅하는 발소리. 킥보드 바퀴가 길을 긁는 소리. 멀리서 휘파람을 부는 소리. 풀 냄새와 흙냄새가 코끝으로 들어왔다.
“휴우…잠깐 쉬어야겠구만.”
나는 자전거를 세웠다. 옆의 물가에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돌 위에 검은 등껍질 하나. 목을 길게 뽑고 햇볕을 받는 거북이였다.
“거북이네...”
그 때도 이곳에서 거북이를 봤었다.
***
우리는 먼저 월드컵 경기장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았다.
“우리 뭐 살까?”
그녀가 카트를 밀며 물었다.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확실히 신이 난 상태였다. 바퀴가 반짝거리는 바닥에서 부드럽게 굴렀다. 매장 스피커에선 아이돌 노래가 작게 흘렀다.
“이럴 때 라면은 무조건 사야지”
내가 앞장서 라면 코너로 갔다. 진열대에 가지런히 쌓인 컵라면들이 벽처럼 서 있었다.
그녀가 김치맛 컵라면을 집어 들었다.
“나는 이거 살래!”
“나는 해물라면으로 사야겠다.”
“한국인은 김치지!.”
“하지만 해물라면이 국물이 더 맛있는데?”
“나는 이 국물이 더 맛있던데!”
결국 둘 다 카트에 넣었다. 우리는 그 사실이 재밌어서 웃었다.
다음으로 데일리 음식이 있는 코너로 갔다.
“치킨도 사가자! 양념으로!”
“난 후라이드가 더 좋던데…”
그녀가 나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양념으로!”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양념으로 먹자!”
치킨을 고르고 나서 우리는 음료코너에 들렸다.
“음료는 자기가 골라!”
“진짜?”
“응! 치킨을 내가 원하는 걸로 샀으니까.”
“그럼 난…펩시 제로 콜라!”
“오예! 그래!”
그녀는 신나하며 콜라를 담았다. 사실 나는 그녀가 펩시 제로 콜라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그것을 말했었다.
우리는 음료를 시원하게 먹기 위해서 얼음도 한 봉지를 샀다.
과자코너를 지나갈 때는 제법 고비였다.
“앗! 저거 맛있는 데!”
“이것도!”
“앗! 저것도!”
과자가 점점 쌓여갔다. 난 자꾸 걸음을 멈추는 그녀를 데리고 계산대로 향했다.
장바구니를 미리 준비해갔지만, 가득차서 자리가 없었다. 다 담지 못한 과자봉지가 계산대 위에 우두커니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직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봉투 드릴까요?”
“…네”
기껏 장바구니를 준비해갔지만 우리는 결국 일회용 봉투를 구매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짐을 잔뜩 싸들고 자전거를 세워둔 곳으로 갔다. 자전거 손잡이에는 원터치 텐트가 걸려있었다. 이건 따릉이가 아니고, 그녀의 집에서 하나를 끌고 온 것이었다.
나는 자전거의 반대쪽 손잡이에 장바구니를 걸고 자전거를 끌었다.
나무들이 길을 만들었고. 잔디밭은 크게 펼쳐졌다. 곳곳에 돗자리를 편 사람들과 형형색색의 텐트가 쳐진 것이 보였다.
“와아아아!”
잔디밭을 뛰는 소년들의 소리.
줄넘기를 하는 아이도 보였고, 목줄을 물고 오히려 주인을 끌고 뛰어가는 강아지도 보았다.
우리는 월드컵 공원의 안쪽 깊이 까지 들어가 잔디밭의 비어 있는 자리를 골랐다.
“여기다 칠까?”
“그래!”
원터치 텐트를 케이스에서 꺼냈다.
“던진다! 하나, 둘 셋!”
휘익-파악!
텐트가 순식간에 펴지며 모양을 갖추었다.
“와 진짜 편하네?”
“그치! 원터치 텐트 챙겨오길 잘했지?”
그녀가 집에서 부터 자전거에 걸고 끌고 온 텐트였다.
“잘했어. 어디 들어가 볼까?”
텐트 안은 생각보다 넓었고, 아늑한 느낌이 있었다.
우리는 그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양념치킨 상자를 열었다. 달큰하고 매콤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졌다.
치익-
콜라 뚜껑을 열자 김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미리 챙긴 종이컵에 얼음을 넣고 콜라를 따랐다.
치킨과 차가운 콜라
“크으~! 이거지!”
“크으!”
그녀와 내가 동시에 감탄사를 흘렸다.
우리는 컵라면도 먹을려고 했으나, 생각해보니 뜨거운 물이 없었다.
하지만 치킨과 콜라가 충분히 맛있었기에, 컵라면은 과감히 포기해버렸다.
“꼭 어디 여행 온 것 같네.”
“그치! 멀리 안 가도 이렇게 즐길거리가 많다니까?”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서울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우라는 식사를 마치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쓰레기는 봉투에 모았다. 젓가락과 종이컵, 치킨뼈. 손에 묻은 양념을 물티슈로 닦았다. 물티슈의 레몬 냄새가 짧게 지나갔다.
정리를 하고 나서 공원 안에 있는 연못 쪽으로 걸었다. 물 표면은 얕은 바람에 잔금처럼 갈라졌다. 갈대가 바람에 흔들렸다. 돌 위에 거북이 하나가 앉아 있었다. 목을 길게 뻗고 햇빛을 쬐는 중이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켰다.
“거북이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어디? 돌만 보이는데…”
“저기 돌 위에 있어!”
그녀는 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유심히 보더니 곧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네? 귀엽다!”
“그치?”
우리는 일광욕을 하는 거북이의 사진을 찍었다.
연못을 지나, 나무 그늘이 이어진 오솔길을 걸었다. 바닥에는 잔가지가 조금씩 깔려 있었다. 밟을 때마다 바스락 소리가 났다.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다가 흰 건물이 눈에 띄었다. 둥근 모서리, 넓은 유리. 유리 뒤로 조형물이 보였다.
서울에너지드림센터라고 적힌 간판이 보였다.
그녀가 간판을 읽었다.
“에너지… 드림?”
“어…꿈꾸는 에너지란 뜻인가?”
“들어가 보자!”
그녀에게 이끌려 안으로 들어가자 시원한 공기가 우리를 맞았다. 프런트 앞에 ‘체험존’ 안내판이 있었다. 한쪽에는 자전거가 놓여 있었다. 설명을 보니 페달을 밟으면 옆의 전구가 켜지는 장치였다. 다른 쪽에는 손잡이를 돌리면 바람개비가 도는 장치가 있었고, 벽에는 ‘오늘의 전력 절약량’ 같은 표시가 있었다. 글자는 작았지만 숫자는 크게 찍혀 있었다.
그녀가 자전거 앞에 섰다.
“이건 해보자!”
나는 옆 자전거에 올랐다. 페달을 밟았다. 처음엔 전구가 희미했다. 조금 더 세게 밟았다. 전구가 밝아졌다.
“아예 완전 환하게 켜볼까?”
“그래!”
우리는 자전거 시합을 할 때처럼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았다.
화악-!
전구가 더 환해졌다. 잠시 후 숨이 찬 우리는 페달을 멈추었다. 그러자 불빛이 서서이 줄었다.
“허억 허억”
숨이 가빴다.
우리는 다른 전시물도 둘러봤다.
단열재 단면을 만져보는 코너. 창문을 닫고 여는 모형. 물을 절약하는 장치. 재활용의 흐름을 보여주는 패널.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우리는 다시 출구로 향했다. 안내 데스크에 서 있던 직원이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우리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돌려줬다. 문이 닫히며 시원한 공기가 뒤로 밀려났다. 공원의 공기가 다시 피부로 올라왔다. 조금 덥고, 조금 흙내가 났다.
어느 새 해가 기울어 있었다. 우리는 다시 텐트 자리로 돌아왔다. 잔디 위 그림자가 길어졌다. 우리는 짐을 정리했다. 쓰레기 봉투가 꽉 찼다.
이제 텐트가 남았다.
“이거… 어떻게 접지?”
나는 케이스를 꺼내 바닥에 놓았다. 텐트의 허리를 잡고 반으로 접었다. 휘청. 원형으로 말리려 했다. 반발력이 있었다. 다시 펴졌다.
나는 다시 한번 시도했다. 그러나 이번도 실패
팔자로 만들어 접는 것 까진 알겠는데 그 뒤로 어떻게 하는 지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텐트와 실랑이를 하는데 발목이 가려워졌다. 난 발목을 긁다가 깨달았다. 모기에 물렸다는 걸.
발목을 확인해보니 이미 여러방 물려있었다.
“아오! 모기! 못하겠어!”
난 잔디밭에서 벗어나 인도에서 다리를 벅벅 긁었다.
결국 그녀가 텐트를 접었다.
“오! 됐다!”
“오오 어떻게 했어?”
“모르겠어! 하다보니 되던데!”
모기 때문에 도망친 나 자신이 순간 부끄럽게 느껴졌다.
우리는 다시 자전거에 짐을 한가득 싣고서 돌아갔다.
***
거북이를 보며 잠시 옛 기억을 떠올리던 나는 다시 자전거를 끌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월드컵 공원이 아니었다. 그저 가는 길이었을 뿐이다.
아직 한참을 더 자전거를 끌고 가야했다.
6화-난지캠핑장
“허억… 허억…”
월드컵 공원을 지나서 자전거를 끌고 걸었다.
숨이 입술에 걸려 뜨겁게 튀었다. 무릎은 화끈거렸다. 어깨끈이 자꾸 미끌어졌다. 손잡이 한쪽에는 동그랗게 접힌 원터치 텐트. 반대쪽에는 장바구니. 등에 멘 배낭은 땀을 빨아들여 더 무거워졌다. 바퀴가 작은 자갈을 밟을 때마다 덜컹, 소리가 났다.
“그때는 어떻게 간 거지…”
그때도 우리는 여기로 왔다. 오늘과 비슷한 하늘. 오늘보다 훨씬 가벼운 다리를 가지고.
캠핑을 하자는 그녀의 말에
“할 수 있겠어?” 하고 내가 되물었다.
“그럼! 할 수 있지!”
라며 그녀는 자신있게 말했었다.
그렇게 차 없는 뚜벅이인 우리들의 캠핑이 시작되었다.
서울에 있으면서 가격도 싼 난지 캠핑장을 예약했다. 우리는 동선을 짰고, 이번에도 자전거를 하나 끌고 가기로 했다. 알아보니 캠핑장 안에 개인 자전거는 끌고 들어갈 수가 있었다.
날씨는 11월. 난방이 필요한 때인지라 우리는 전기난로도 챙겨야 했다.
나는 캠핑에 필요한 도구들과, 전기난로, 이불 등을 맡았고 그녀는 자전과 원터치 텐트를 맡았다.
월드컵 경기장 쪽의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우리는 한참을 자전거를 끌고 걸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그 때의 설렘과 기대감은 아직까지 선명히 기억이 났다.
난지 캠핑장의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는 생각보다 차가 많았다. 아마 차도 없이 자전거에 짐을 싣고 온 사람들은 우리가 유일하였을 것이다.
자리표를 받아 들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텐트 사이트는 넓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를 작은 집처럼 꾸몄다. 큰 텐트, 접이식 의자, 두꺼운 매트, 높이 솟은 랜턴, 아이스박스…지글지글 하고 고기 굽는 소리도 들렸다.
우리는 그 으리으리한 캠퍼들 사이에서 짐을 풀었다.
휘릭-파악!
원터치 텐트를 던지는 것으로 텐트 설치가 끝났다.
남들은 못을 박기도 하며 큰 텐트를 치는데 우리는 그져 텐트를 던지는 것이 전부였다.
남들은 큰 화로에그릴을 올려놓고 고기를 구우며 바베큐 파티를 할 때, 우리는 숯에 불도 붙이지 못했다. 심지어는 화로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서 다이소에서 파는 은박 냄비를 화로 처럼 사용했다.
문제는 숯은 준비했으면서, 불 붙일 것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망했네.”
고기를 포기하고 배달을 시켜먹어야 하나 고민할 때,
“어? 라이터다!”
그녀가 라이터를 주웠다.
“오오오오!”
우리는 라이터로 힘겹게 불을 붙였다. 나뭇가지를 모아서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그 나뭇가지로 숯에 불을 붙였다.
숯이 서서히 빨개졌다. 드디어 불이 붙은 것이다.
“오오오! 고기! 빨리 고기 굽자!”
우리는 마찬가지로 다이소에서 산 작은 그릴을 올리고 고기 몇 조각을 얹었다. 그릴이 작았기에 고기를 많이 올릴 수가 없었다. 기름이 떨어졌다. 지글지글. 연기가 텐트 방향으로 흘렀다. 나는 연기를 피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나는 젓가락으로 고기를 이리저리 굴렸다.
“너무 태우지 마.”
“조금 태운 게 맛있는데...”
우리는 그 사소한 취향으로 한 번 더 웃었다. 고기 한 조각을 먼저 입에 넣은 건 그녀였다. 한 번 씹더니 눈을 크게 떴다.
“맛있다!”
나는 그 말에 비로소 배가 더 고파졌다. 내 입에도 한 조각. 기름이 혀에 닿았다. 고소했다. 힘들게 붙인 불맛이 약간 섞여 있었다.
전기 냄비에 미리 사온 김치찌개 키트도 끓였다.
그녀는 김치찌개를 한 입 떠먹고는 크고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떴다.
“대박…!”
“그렇게 맛있어?”
나도 얼른 김치찌개를 한 숟갈 떠먹었다.
정말로, 정말로 맛있었다. 인생에서 먹은 가장 맛있는 김치찌개였다.
저녁을 먹자 금새 어둠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캠핑장 곳곳에 조명이 켜졌다. 옆자리 랜턴이 노란 원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그 원 안을 들락거렸다. 멀리서 누군가 또 기타를 들었다. 첫 음은 어설펐지만, 두 번째부터는 괜찮았다. 강 쪽에선 바람이 깊게 들어왔다. 텐트 천이 바스락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온갖 감성 있는 조명들을 켰지만, 우리는 거북이 어항용 스탠드를 자전거에 설치해 간신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크흠…”
나는 턱을 괜히 쓰다듬었다.
“별이 보일까?” 그녀가 물었다.
“서울이라…힘들지 않을까?”
“서울도 별 보이거든!”
우리는 고개를 올렸다. 검푸른 하늘에 작은 점 몇 개가 있었다. 반짝임은 미약했지만, 충분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저기 있잖아!”
“오! 그러네!”
“저기도!”
“…저건 비행기 같은데?”
“…그러네. 아무튼 보이잖아!”
“그러네. 별이 보이네.”
우리는 고기를 다 먹고, 김치찌개를 국물까지 깨끗이 비웠다.
나는 숯불이 들은 은박냄비 속에 마트에서 사온 고구마 몇 개를 넣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잘 준비를 했다.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했다. 싼 가격에 기대하지 않았는데, 난지 캐핑장은 뜨거운 물이 콸콸 아주 잘 나왔다.
덕분에 설거지도 편했고, 씻는 것도 아주 개운하게 마칠 수 있었다.
씻고 돌아와서 숯불을 확인했다. 빨갛던 숯이 검게 바뀌어 있었다.
“불이 꺼진 건가…?”
나는 아무생각 없이 검은 숯에 손을 대었다가 깜짝 놀랐다.
“앗! 뜨거!”
숯은 겉보기에만 까말 뿐 여전히 뜨겁게 열기를 내 뿜고 있었다.
“괜찮아?”
그녀가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괜찮아! 별거 아니야!”
나는 괜스레 센척을 했다.
그날 밤 몰래 화끈 거리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잠에 들어야했다.
텐트 안.
우리는 이불을 깔고, 베개 대신 겉옷을 베고 누웠다. 옆 텐트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스며들었다. 난로 냄새, 고기냄새, 한강냄새…그 냄새들이 나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휘이잉-!
바람이 창문을 열어젖혔다. 텐트 천이 크게 펄럭였다. 차가운 공기가 안으로 쏟지고, 햇빛이 환하게 비추었다. 그래서 나는 눈이 번쩍 떠졌다.
“뭐야…”
나는 이불을 끌어당겼다.
그런데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바람이 깨워주다니! 정말 낭만적인 아침이야!”
그녀의 웃음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낭만적인 아침이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다시 찾은 난지 캠핑장.
나는 익숙하게 원터치 텐트를 펴고 짐을 풀었다.
이제는 작은 미니화로도 있고, 토치도 제대로 준비했지만…
“그 때 처럼 맛있지는 않네.”
그 때의 그 맛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밤하늘에 별은 보였다.
그렇게 텐트에서 홀로 잠에 들었다.
눈을 뜨니 늦은 아침이었다.
그때처럼 바람이 기분 좋게 잠을 깨워주었으면 좋으련만.
나는 텐트를 접고 짐을 정리했다. 수 없이 접어본 원터치 텐트는 이제 한 손만으로 접을 수 있었다.
다시 자전거를 이끌고 터덜 터덜 집으로 향했다. 이 길 전부 그녀와 걸었던 길이다.
서울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거기는 지낼 만 하시오?”
그녀는 저 멀리 자유로운 곳으로 떠났지만, 난 아직 그녀와의 시간 속에 있었다. 아직 나의 삶은 ‘나’의 삶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었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그녀와 함께 하였던.
“나는 아직 서울에 있소.”
서울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