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
  • illustration

대칭붕괴.

  • 작가 : 이하루
1. 제목
  • 대칭붕괴.
2. 기획의도
지난 6개월 간 서울에 살면서도 나는 ‘속해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19년에 걸쳐 돌아오기까지 부모님이 가끔 보여주시던 사진이 전부였다. 어린 나와 빌라 한 방. 서울이란 내게 어떤 곳일까? 다른 도시보다 인구밀도나 건물이 더 높은 곳? 나도 롯데타워 전망대에서 석양 아래 온 서울을 바라본 적이 있다. 그 높이에서 바라본 서울은 어디서보다 멀게 느껴졌다. 이 도시를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다른 모든 것을 관찰하는 방법과 같을 것이다. 가장 가까이 다가가 모든 감각으로 보고 느끼는 것. 휴일이면 랜드마크를 찾아 떠돌고, 어느새 다시 일상 속에 파묻혀 내가 사는 도시조차 잊는 것. 그렇게 지내다보면 가끔 나는 수험생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고개를 파묻고 미지의 불안과 부끄러움에 차 고등학교 복도를 가득 매운 인파를 지나치던 내게로.
하지만 그때와 지금 사이 어떤 간극이 있지 않을까? 그럴때면 나는 어느 저녁 삼촌과 서울의 한적한 거리를 걸어가던 때를 떠올린다. 그리고 아파트에서 내다본 야경. 이곳에서 매일같이 살아가는 주민의 시선으로. 삼촌은 롯데타워가 멀찍이 보인다고 말했지만, 사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아파트 단지 속 수많은 작은 불빛이었다. 밤길을 거니는 어느 관광객도 찾아오지 않을 이곳, 불빛 하나하나 서로 다른 굴곡의 삶.
서울을 진짜 아름다운 도시로 만드는 건 랜드마크도, 향수에 젖은 기억도 아닌 듯 하다. 저마다의 마음 속 서울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지금, 단지 우리 모두가 여기 함께 존재한다는 걸 느낄 때가 아닐까?
나는 이 그림이 “현재성”을 느끼게 해준다면 좋겠다. 비록 그런 류의 시의성이란 한 해도 버티지 못하고 빛을 잃겠지만, 모든 순간은 결국 사치같은 향수가 되기 마련인 법. 그렇다면 그저 여기 함께 존재한다는 감정보다 행복한 일도 없다. 그러니 대도시 속 불안과 공포를 내려놓고 마냥 현재에 정신을 집중해보자. 이 그림이 올해 이런 사소한 위안으로 향하는 매개가 되기를 바라며 기획했다.
3. 설명
그림의 가운데에는 한 사람이 허공에 떠 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검은 셔츠, 검은 타이, 검은 코트. 우스꽝스러운 갓과 스노클링 장비 역시 빼놓을 수 없겠지? 이 사람은 대양 속에 질식하듯이 지상에서 분주함 속에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바로 지금, 낮과 밤의 경계에서 부유하는 순간 모든 건 괜찮다. 주변을 둘러보자.
빌딩을 밝히는 작은 조명들과 종로를 가로지르는 길거리. 길가에는 생명력 넘치는 가로수가, 상단에는 탁 트인 하늘이 펼쳐져 있다. 좌측 블록 끝에 종로타워 역시 보인다. 하지만 그림 속 서울의 중심은 랜드마크나 ‘메가시티’의 스카이라인이 아니다. 중요한 건 겉보기에 사소하지만 제각기의 삶이 담긴 작은 불빛들이다.
양 옆의 전광판에는 응원의 메시지를 비롯해 서울을 대표하는 아이디어들이 보인다. 눈에 잘 띄는지 모르겠다만, 두 전광판에는 사실 다른 분위기의 아이콘을 그려넣고 싶었다. 그래서 우측의 야광색 전광판에는 곡선 위주의 디자인, 좌측의 붉은 전광판에는 더 각지고 절도있게 한국적인 에너지를 담고자 했다. 전광판의 두 색은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동시에 가운데에 장노출 사진 마냥 길게 늘어진 자동차 후미등과 전조등의 색은 전광판과 반대편에 위치해 팽팽한 긴장감을 이루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건물의 높낮이나 크기 역시 이들과 어울리게 위치해 공간 구성에 전체적인 조화를 이룬다. 1점 투시 원근법 역시 복잡하고 압도적으로 보이기 쉬운 거리의 모습을 단순하게 정리해, 모든 게 괜찮다고 알려주는 중심의 인물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사실 인물의 흥미로운 패션 센스를 제쳐 두면, 옷차림은 하루에도 수십번 지나칠 만한 복장이다. 그만큼 인물에 생기를 주기 위해 제스처가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케이’ 사인은 전세계에서 쓰이지만 어디까지나 영어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런데 항상 내가 재밌다고 생각한 점은 영어로 쓴 OK와 한글 초성 ”ㅇㅋ“가 은근히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왕 쓸 거라면 한글 자음의 독특한 귀여움을 살려보고 싶었다.
물론 대체 왜 갓과 오리발, 다이빙 고글을 그려야만 했는지 의문이 든다는 걸 나도 안다. 터놓고 말하자면, 가끔 그림에는 무의식 중에 설정이 더해지곤 한다. 그러니 누군가 설명을 요구한다면 나도 감상하는 입장에서 의미를 도출해낼 수 밖에. (여러분도 스스로 생각해보기를.)
일단 나는 인파가 많은 곳을 그닥 좋아하진 않는다. 커다란 강의실에 두 사람만 덩그러니 앉아있다면 떠날 때까지 상대를 의식할테고, 동시에 널찍한 광장에서 수십명을 마주친다 해도 긴장감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배가 될 뿐. 그만큼 서울의 길거리는 인파만으로 압도하는 위엄이 있달까? 내게는 공포다. 비유하자면 바다 깊은 곳에서 혼자 익사해가는 기분일 듯 하다. 그래서 지상을 떠나 저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숨을 되찾은 듯한 안도감과 함께 대도시 속 긍정적인 기운이 더 잘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이 우스꽝스러운 인물이 여러분에게 어떤 감정을 전해준다면, 그런 ‘대도시 속 가벼움’이기를 바란다.